건축 인테리어 회사들은 재빠르게 부엌을 없애고 그 자리에 가족이 함께 음악과 책을 즐길 수 있는 북카페를 만들었다. 주방의 소멸은 요리하는 사람, 곧 엄마의 부재를 뜻했다. 때마침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은퇴한 중장년 아버지들을 겨냥해 전국 주민센터마다 ‘아빠 요리교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사라져가던 주방의 부활
비자발적 격리가 인류의 요리 본능을 깨운 걸까. 2020년은 주방이 화려하게 부활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코로나19는 집 안에서 조연으로 밀려났던 주방을 주연으로 만들었다. 올 들어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음식물 처리기 같은 주방가전과 용품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수백만원대 프리미엄 수입 주방용품은 국내 진출 이후 역대 가장 높은 매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제과제빵기, 토스터 등 베이킹 가전과 에어프라이어 등 홈쿠킹 기기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김치냉장고도 때아닌 특수다.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전체 인구의 35~40%가 ‘집밥’을 처음으로 해 먹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베이킹’ ‘쿼런틴 베이킹(자가격리 중 홈베이킹)’의 해시태그를 단 SNS 게시물도 수십만 건에 이른다. 일본에선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시즌보다 더 많은 양의 버터가 팔리는 등 제빵 재료의 ‘품귀 현상’도 빚었다. 중국의 주요 쇼핑 채널에선 올 들어 스낵과 가공식품 매출이 20% 이상 떨어진 반면 신선식품 매출은 70% 이상 늘었다. 매출이 수년째 급락하던 가정용 음식 보관용기 회사 타파웨어의 실적도 화제다. 올 들어 뜻밖에 반전 드라마를 쓰면서 주가가 35% 이상 오르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주방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의 부엌은 고립된 공간이었다. 늘 어둡고 연기가 가득했다. 여성의 노동이 전제돼야 기능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근대적 주거공간인 아파트가 등장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 안에 아궁이가 있었다. 현관에서 바로 부엌을 거쳐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된 곳도 많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부엌은 거실과 맞닿는 ‘모두의 공간’으로 설계됐지만 실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전히 엄마이자 아내, 여성이었다.
노동의 공간에서 오락의 장소로
코로나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은 역설적으로 부엌을 ‘오락의 장소’로 바꿔놓고 있다. 한 유명 기업인은 주말마다 가족에게 요리해주는 장면을 SNS에 공유한다. ‘방구석 요리 챌린지’ ‘달고나 커피 챌린지’ 등이 유행하며 요리는 연령과 성별 상관없이 모두가 즐기는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자 주말에 한두 끼는 직접 한다는 50대 남성이 부쩍 늘었다. 때론 ‘할머니,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할머니가 해주던 집밥의 추억을 소환하는 레시피가 유행한다. 중국에선 근거리 이웃에게 평범한 주부가 집밥을 만들어 배달해주는 앱 ‘화이즈아츠판’도 인기다.인류는 또 한번 진화할까
요리는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인류를 있게 한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학설이 있다. 요리가 없었다면 현생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없었을지 모른다는 가설이다. 네이처지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가 있기 전 ‘요리하는 인간’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가 있었다. 사용하는 식재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뇌의 용량이 급격하게 커졌다는 증거도 있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자 창조의 원천이 됐던 요리. 인류가 다시 칼을 잡고 불을 쓰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우리가 또 한번 진화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