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으로 꼽히는 칭화유니그룹이 22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 연장에 실패해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부채 부담이 커 대규모 자금 수혈 없이는 정상 영업이 힘들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신용등급도 강등

경제전문매체 차이신은 칭화유니가 지난 16일 만기 도래한 13억위안 규모의 회사채 만기 연장을 채권단에 요청했으나 최종 무산됐다고 17일 보도했다. 13일 상하이은행이 주관한 채권단과의 회의에서 칭화유니는 원금 1억위안을 먼저 갚고, 나머지는 6개월 뒤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채권단의 86%가 동의했지만 최대 채권자인 중국국제캐피털과 화타이증권이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6개월 뒤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채권단 회의에 참석한 법무법인은 즉각 만기 연장 협의가 결렬됐다는 법룰적 판단을 내렸다. 감독기구인 국가은행간시장교역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채 만기 연장은 채권단 전원이 만장일치로 합의해야 한다. 중국 신용평가사 청신국제는 칭화유니의 신용등급을 기존의 AAA에서 AA로 강등하고 하향 검토 감시 대상에도 올렸다.

칭화유니는 국립 칭화대가 설립한 반도체 전문 그룹으로 중국 행정부인 국무원이 경영하는 사실상 국유기업이다. 산하에 메모리업체 양쯔메모리, 통신칩 설계전문업체 쯔광짠루이 등도 보유하고 있다.

칭화유니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 선봉장이었다. 화웨이의 설계 전문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미국의 제재를 받자 연구 인력 대부분을 쯔광짠루이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양쯔메모리는 충칭시와 함께 메모리 분야에 향후 10년간 8000억위안(약 134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반도체 굴기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이신에 따르면 칭화유니의 지난 9월 말 기준 부채는 528억위안(약 9조원)이며 이 가운데 60%가 1년 미만 단기 채무다. 반면 현금은 40억위안을 보유 중이다. 올 연말에 13억위안과 4억5000만달러 규모 채무의 만기가 돌아온다. 내년 6월 말 만기인 채무도 51억위안과 10억달러에 달한다.

CIB리서치는 “칭화유니의 채무는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가 아니라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업이익에 비해 이자가 너무 커 정상적 기업활동을 하기 어려운 수준이어서 전략적 투자자의 대규모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칭화유니는 2015년 삼성전자에 중저가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공급하는 등 한때 중국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클라우드 등 신사업에 외형적 투자를 늘려가는 가운데 기술력을 쌓지 못해 고부가가치 반도체 영역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수익성도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국유기업 잇단 유동성 위기

칭화유니뿐 아니라 중국의 대형 국유기업들이 잇달아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다. 랴오닝성의 핵심 기업으로 꼽히는 화천자동차(직원 4만7000명)의 채권단이 지난 16일 법원에 이 회사의 구조조정을 신청했다. 화천자동차는 지난달 말 만기였던 1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회사인 브릴리언스가 독일 BMW와 함께 중국 합자법인인 브릴리언스BMW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 10일에는 허난성 보유 기업인 융청석탄전자그룹이 10억위안의 단기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도산했다. 이 회사의 모기업이자 허난성 최대 기업인 허난에너지화학그룹의 신용등급도 A에서 BB로 강등됐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