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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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증오의 거짓말들에 떠밀려
자신의 양심을 파괴하지 말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용기를 내야"
이응준 < 시인·소설가 >
자신의 양심을 파괴하지 말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용기를 내야"
이응준 < 시인·소설가 >
![[이응준의 시선]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안간힘](https://img.hankyung.com/photo/202011/07.23536927.1.jpg)
조지 오웰은 청년 시절 영국 식민지 버마(‘미얀마’의 전 이름)에서 경찰로 근무했다. 국제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자신이 대영제국주의의 공권력임을 부끄러워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순사로 지내면서 일본제국주의를 미워하는 일본인 공산주의자인 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어느 날, 경찰 오웰은 길들여진 코끼리가 발정이 나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마을 여기저기가 부서져 있고 남자도 하나 죽어 있었다. 하지만 저만치서 풀을 뜯고 있는 코끼리는 이미 진정상태로 접어들어 염소만큼도 위험해 보이질 않았다. 코끼리는 큰 재산인 데다가 짐승의 생태를 관리 못 한 책임은 코끼리의 주인에게 있기에 오웰은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다. 동물에게 도덕과 형법을 들이댈 순 없는 노릇이며 무엇보다, ‘야생 코끼리’를 ‘인간의 코끼리’라고 우기고 있는 것은 코끼리가 아니라 인간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새 몰려든 2000명이 넘는 군중은 ‘괴이한 희열’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 코끼리가 날뛸 적에는 제 안위만 챙기던 사람들이 살기가 등등해 한껏 ‘신이 나 있었다’. 그들은 제 소유도 아닌 코끼리 고기까지 탐냈다. 순간 오웰은 깨닫는다. 저 군중 때문에 코끼리를 죽여야만 한다는 것을. 그게 지배자인 영국인 경찰과 피지배자인 버마인들 사이의 문제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악마의 원리’라는 것을. ‘사람들의 어두운 기대’에 떠밀려 자신의 양심과 자유가 파괴되리라는 것을. 결국 오웰은 살인하는 심정보다 더 큰 괴로움 속에서 여러 발의 난사 끝에 코끼리를 죽인다.
“사람들은 사악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들은 단검과 바구니를 든 채, 쓰러져 피 흘리는 코끼리에게 아귀 떼처럼 달려들어 순식간에 뼈만 남겨버린다. 과연 저들 가운데 내가 오로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코끼리를 죽였다는 사실을 아는 자가 단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조지 오웰은 《코끼리를 쏘다》라는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영국 식민지 버마의 영국인 청년 경찰 에릭 아서 블레어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아파할 줄 아는 영혼이었기에 좌익 파시즘, 우익 파시즘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파시즘들을 경고하고 고발한 작가 조지 오웰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거짓말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쓴다”라고 말했으며 “정치적 글을 예술로까지 승화시키고 싶다”는 꿈이 있던 그는 그 꿈을 이루고 마흔일곱 살에 죽었다.
눈을 감으면 각자 살아오면서 죽였던 코끼리들이 보일 것이다. 나도 수많은 코끼리들을 쏴 죽였다. 나의 무지가 날 그렇게 만든 군중이기도 했고 내 욕망이 그러한 군중이기도 했으며 때로 그 군중은 실제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기도 했다. 다만 폭로하고 싶은 것은 정의로운 자유인으로 변장한 채 중독된 진영증오 속에서 미쳐버린 자들의 거짓말이다.
‘인간’에 대한 의심을 놓지 말아야 우리는 겨우 파시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사상은 기질이 입은 옷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살다가 죽는다. 그날 밤 남은 인생 자유인으로 살겠다던 그 친구는 3년 뒤 교통사고로 죽었다. 나는 그가 자신과의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모른다. 인생은 스스로에게조차 수수께끼니까. 다만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조지 오웰처럼, 우리 모두는 군중 때문에 코끼리를 총 쏘아 죽이는 괴물은 되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랑을 믿는 일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