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살아나면서 국내 기업들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규모가 올들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코스닥 기업들의 사모발행 시장이 확대됐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견기업들도 잇따라 공·사모 사채 발행에 나서고 있다. 주식 관련 사채를 활용하면 기업들이 저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신주가 발행되면 재무구조도 개선할 수 있다. 기관과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주식관련 사채는 이른바 '메자닌'(1층과 2층 사이) 투자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기업들도 메자닌 발행 뛰어들어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8일까지 국내 기업이 발행한 주식 관련 사채 규모는 총 6조480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메자닌 발행액인 5조39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주식관련 사채를 활용하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주식 관련 권리를 내주며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투자자들도 발행 회사가 부도가 나지 않는 한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고, 주가가 오르면 신주인수권을 행사하거나 매도해 차익을 얻을 수 있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자본시장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주식 관련 사채 공모 시장까지 달아올랐다. 지난달 28~29일 청약을 진행한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인 EDGC의 CB 발행에는 600억원 공모에 총 1조8596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같은달 티웨이홀딩스가 진행한 BW 공모에도 300억원 공모에 3441억원이 몰리며 11.5대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재무구조가 나빠진 일부 대기업들은 한 발 먼저 발행을 마쳤다. 한진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대한항공 지원을 위해 지난 7월 300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했다. 현대로템도 지난 6월 CB 2400억원을 발행했다.

재무구조가 좋은 대기업들도 싼 값에 자금을 조달하며, 묶여있는 자본을 유동화하는 수단으로 EB를 활용했다. KB금융지주는 지난 6월 미국 사모펀드(PEF) 칼라일에 2400억원 규모의 EB를 발행했다. 주당 4만8000원에 주식 교환권을 주는 대신 금리는 0%다. 당시 주가는 3만4000원대였는데 칼라일이 주가 상승에 베팅한 것이다. 현재 주가는 4만6000원대로 올랐다. 카카오도 싱가포르에서 자사주 71만1552주를 주당 47만7225원으로 교환할 수 있는 EB를 발행해 3억달러(약 3395억원)를 조달했다. 현재 카카오 주가는 36만원대다.
[한경 CFO Insight]주가 오르자 CB, BW 봇물
◆주식전환 등 권리행사 급증

주가가 오르면서 CB 전환권을 행사하는 등의 권리행사 사례도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지난 3분기 주식 관련 사채의 권리 행사는 2490건으로 2분기(1345건)보다 85.1% 늘었다. 기업들에는 긍정적인 소식이다. 주식 전환권이 행사돼 신주가 발행될 경우 자본이 늘어나기 때문에 재무구조가 대폭 개선된다.

투자자들에게는 더욱 호재다. 현대로템 CB 투자자들은 단기간에 주가가 뛴 덕분에 두 달여만에 60% 가량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현대로템 CB는 보통주 주가가 15거래일 연속 전환가액(9750원)의 140% 이상(1만3650원)을 웃돌면 회사가 콜옵션을 행사해 상환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 투자자들이 앞다퉈 전환권을 행사했다. 증권가에서는 시장의 유동성에 힘입어 당분간 주식 관련 사채 발행 확대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단기 재무구조 악화와 경영권 부담 유의

모든 기업이 주식관련 사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식 발행은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주주 지분율이 낮거나 경영권 분쟁이 있는 경우엔 활용하기 어렵다. CB와 BW는 주가가 상승한 상태에서 전환·신주발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재무제표에 회계상 파생상품 손실로 반영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주식관련 사채는 투자자들과의 일종의 옵션계약이기 때문이다. 증권사 투자은행(IB) 부문 관계자는 "CB나 BW로 인한 장부상 손실이 기업가치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오히려 호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결산시기와 맞물릴 경우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