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거센 '프듀' 조작 후폭풍
안준영 PD·김용범 CP 징역형
피해 연습생 12명 공개돼
활동 중인 아이즈원 향한 십자포화
추가 피해자 발생 경계해야
"데뷔라는 꿈 하나만 보고 모든 열정을 쏟았던 많은 연습생들이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문자투표에 참여하는 등 프로그램을 응원해 주신 팬들과 시청자 여러분께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죄송한 심정입니다."
지난해 12월. CJ ENM 허민회 대표이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문을 발표한 지 약 11개월이 흘렀다. Mnet '프로듀스'의 연출을 맡았던 안준영 PD와 김용범 CP는 지난 18일 항소심 공판에서 각각 징역 2년과 1년 8개월을 선고받았다. '프로듀스 101' 조작 사태는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표를 던졌던 시청자에게도, 데뷔의 꿈 하나만 보고 구슬땀을 흘렸던 연습생들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를 남겼다. 그리고 항소심 재판부가 피해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상처는 다시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켰고,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 피해자 공개, 수혜자 비공개…왜 난리 났나
가장 화제가 된 것은 항소심 재판부가 공개한 피해자들이었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송영승·강상욱 부장판사)는 업무방해,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준영 PD와 김용범 CP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피해 연습생들에게 물질적 배상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억울하게 탈락됐다는 사실이 공정한 형사재판을 통해 밝혀지는 게 진정한 피해 구제의 출발"이라며 조작으로 피해를 본 12명의 연습생들을 공개했다.재판부가 공개한 명단을 통해 어떤 연습생이, 어느 단계에서 탈락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장 이목이 집중된 것은 데뷔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순위가 바뀌어버린 연습생들이었다. 네티즌들은 조작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며 해당 연습생들에 대한 확실한 피해 보상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CJ ENM 측은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 자체적으로 파악한 피해 연습생분들에 대해 피해 보상 협의를 진행해 오고 있었다. 일부는 협의가 완료됐고, 일부는 진행 중이다. 금번 재판을 통해 공개된 모든 피해 연습생분들에게는 끝까지 책임지고 피해 보상이 완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반면 피해자로 공개된 연습생들은 조용하다. 이미 다른 팀에 합류해 활동을 하고 있거나 배우로 새로운 시작을 알린 단계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리미트리스 성현우, 자진 하차 의혹이 불거진 그룹 뉴이스트 강동호를 제외한 대부분이 입장 표명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여론은 술렁였지만 팀으로든, 개인으로든 향후 활동을 염두한다면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보도 목적이나 가치 차원에서는 피해자가 밝혀지는 게 맞을 수 있겠지만 연예계, 엔터테인먼트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활동하는 데 있어 당사자에게 불편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알려지기에 앞서 본인이 먼저 공개에 동의하는 게 인권적 차원에서 그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무조건 피해자를 공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생각을 밝혔다.
◆ 십자포화 당한 아이즈원, 과연 옳을까?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통해 탄생한 프로젝트 그룹 중 현재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이즈원은 항소심 판결 이후 십자포화를 당했다. 이들이 탄생한 '프로듀스 101' 시즌3의 최종 단계에서 떨어진 피해자가 두 명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혜를 입은 멤버가 포함된 아이즈원이 활동하는 걸 반대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 아이즈원은 오는 12월 컴백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논란은 더욱 거셌다.지난해 CJ ENM은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피해자와 수혜자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피해자는 공개했지만, 수혜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는 비슷했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고자 함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의해 순위가 유리하게 조작된 연습생 역시 자신의 순위가 조작됐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들도 피해자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또 이름을 밝히게 되면 정작 순위 조작 행위를 한 피고인을 대신해 희생양이 될 위험이 크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어김없이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온라인 상에서는 아이즈원이 활동을 지속하는 게 옳은가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보다는 수혜자가 누구인지 색출해내려는 이들로 떠들썩했다. 일부 멤버들의 이니셜을 언급하며 추측하는 네티즌들부터 아이즈원 팀 자체에 대한 비난이 담긴 댓글까지 쏟아졌다. 물론 시청자들의 투표를 바탕으로 데뷔한다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조작된 결과로 결성된 그룹이라면 팀의 정당성 자체가 부정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이즈원은 활동 내내 '조작돌'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비난의 방향이다. 비난은 어느새 제작진이 아닌 아이즈원을 향해 있었다. 대상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공격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이즈원 멤버들도 제작진 투표 조작의 피해자일 수 있다. 소속사나 방송국을 비판해야 하는데 손쉬운 방법이 멤버들을 비난하는 거다. 이는 적절하지 않다"면서 "대중이 원하는, 팬들이 원하는 활동을 했다고 하면 그 부분도 인정해 줘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해체하라', '활동을 금지하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CJ ENM에서 피해자인 연습생들에게 활동할 기회를 최대한 새롭게 제공해 주는 게 필요한 거다"고 전했다.
◆ "문자투표비 100원 배상하라" 판결의 본질
'프로듀스 101' 제작진에 대한 실형 선고와 함께 재판부는 생방송 문자투표 참여자 박모씨가 안준영 PD, 김용범 CP, 보조 PD 이모씨에게 "투표로 지출한 100원 배상해달라"며 제기한 배상 신청을 인정했다. 배상액은 단 100원에 그치지만 유의미한 판결이다. 시청자 박씨는 배상액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서도 배상 신청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문자투표 비용 100원이 피고인들이 시청자를 속인 기만행위임이 분명하다"며 "시청자를 속인 사기 범행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투표를 한 시청자들은 모두 사기 피해자에 해당하지만 배상 신청을 한 사람은 박씨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다른 시청자들은 문자투표 비용을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일까. 전문가에 따르면 가능은 하다. 그러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통한 방법이기에 효율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단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한다면 100원을 받을 수 있긴 하다. 한 번이라도 유료 문자투표를 한 사람이라면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 판결문을 토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청구금액이 100원으로 적기도 하고, 투표 내역이나 서로 다른 투표 금액을 입증하는 등의 까다로운 소송 절차와 비용을 감내하고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모일지는 의문이다"고 의견을 전했다.
'100원 배상' 판결은 물리적인 보상보다는 사건의 본질을 되짚는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CJ ENM이 책임 있는 자세로 방송국으로서 지니는 역할과 입지에 걸맞은 보상을 하라는 꾸짖음의 의미가 담겼다. 많은 연습생들이 머리와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이 조작이라는 어긋한 기준 안에서 불분명하게 점수화됐다.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시청자들의 시간도 누군가의 시나리오 안에서 허무맹랑하게 흘러가버렸다. 피해자 보상에 대한 내용은 공정성을 생각해 더 이상 감춰져서는 안 될 영역이 됐다. 피해 연습생들에 대한 명확한 보상 기준과 투명한 진행 과정의 공개가 불가피하다. 이와 함께 실질적으로 투표값을 돌려 받기 어려운 시청자들의 피해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되며, 추가 피해자의 발생 또한 경계해야 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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