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 조항에 대해 대법원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대법원은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및 3% 룰’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전달했다. “주주권의 본질에 반하며 ‘1주 1의결권 원칙’에 대한 과도한 예외”라는 설명이다. 대법원은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서도 “국내 논의와 해외 입법례를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친(親)정부 성향’의 대법원이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에 제동을 건 모양새여서 주목받고 있지만, 어찌 보면 최고 사법기구의 이런 입장 표명은 당연한 귀결이다. 아무리 집권층과 코드가 맞는 대법원이라지만 명백히 헌법 정신과 자유민주적 시장질서에 반하는 법안에 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상법 개정안은 회사와 주주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선진국에서도 입법례를 찾기 힘든 ‘갈라파고스 규제’로 가득하다.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별도의 절차로 선출하고, 그때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개정안은 투기펀드에만 유리한 불공정 조항이다. 단기 투기펀드는 ‘지분 쪼개기’를 통해 작은 규모의 투자금으로도 이사회에 진입한 뒤 핵심 경영정보를 빼내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장 모회사 주식을 0.01%(비상장사는 1%) 이상 확보하면 자회사 이사에게 소(訴)를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한국 기업에만 부과되는 과도한 규제다. 자회사 주주권에 대한 침해이자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법인격에 대한 명백한 무시다. 대기업 신사업 투자의 상당수가 자회사 설립을 통해 이뤄지는 현실에서 연구개발(R&D)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은 여당 의원들이 추가로 발의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조항에 대해서도 입법사례가 신흥국 몇 나라에 불과하다며 반대했다. 반면 경영권 방어역량 제고를 목적으로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은 “적대적 M&A의 역기능 억제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상법 개정안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많은 전문가와 현장 경영자들의 생각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상법 개정안을 강행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기업 경쟁력’이라는 소중한 자산의 파괴를 자초하는 패착이라는 점을 여당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