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너지 화두 된 '탄소중립'…외국은 어떻게 하고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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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실현하면서 경제도 발전시킬 방안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대거 배출해 기후변화를 앞당기는 것으로 알려진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는 줄이고, 대신 저탄소 에너지원을 개발해 쓰는 경제산업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각국에서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필요성이 커지면서 탄소중립 계획을 경제 신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EU 집행위는 이를 위해 역내 각국과 에너지·자동차·화학·운송 등 각 분야 기업 총 200개 이상이 참여하는 민관 ‘수소연합’을 결성하기로 했다. EU 예산에선 수소 이니셔티브 재원을 기존의 두 배인 13억유로(약 1조7230억원)로 늘린다.
독일은 한발 앞선 지난 6월 국가 수소경제 전략을 발표했다. 약 90억유로를 들여 수소 인프라를 구축해 수소를 운송·철강·화학 등 주요 산업 에너지원으로 쓰겠다는 게 골자다. 노르웨이도 같은달 수소에너지 육성을 국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발표했다. 미국은 매년 수억달러 규모의 공공·민간투자를 벌이고 있다. 2002년부터 수소 인프라 로드맵인 ‘2030 수소경제 이행비전’을 발표해 대거 투자 사업을 벌였다. 미국 연료전지 및 수소협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수소에너지 시장 규모를 연간 1400억달러로 키워 일자리 70만 개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 미국에선 이와 함께 옥수수나 동물성지방 등 미활용 자원을 원료로 쓰는 신재생에너지 생산 바람도 불고 있다. 정유사 필립스66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정유공장을 세계 최대 규모 바이오디젤 생산공장으로 바꾸는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약 20년만에 원자력발전을 단독으로 다루는 보고서를 내고 “원자력발전이 탄소중립 붐을 타고 1970~1980년대와 비슷하게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2일 미네소타주에 있는 한 원전에 수소에너지 생산설비를 들이는 사업에 1400만달러(약 155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뽑아내는 첫 사례를 내기 위해서다. 미국은 이미 자국 저탄소 전력의 절반이 넘는 비중을 원전에서 생산하고 있다. 최근엔 원전 활용 범위를 수소에너지 생산으로도 확대했다.
영국은 정부가 제조기업 롤스로이스 등 민간 컨소시엄과 손잡고 영국 곳곳에 ‘미니 원전’을 건설한다. 소형 모듈러 원자로(SMR) 최대 16기를 지어 각각 440MW 규모 전기를 공급하는게 목표다.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서포크주에 새 원전을 건설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각국도 원전을 짓기 위해 프랑스, 미국 등과 기술협의 중이다. 에너지 기술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동유럽 각국이 유럽연합(EU)이 제시한 탄소중립 기한을 맞추려면 원전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같은 노력에 올 상반기 기준 독일 전력의 48.7%가 풍력, 수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그러나 대가가 비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7년 사이 독일 가정용 전기요금은 150% 수준으로 뛰었다.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용 자체도 비싼데다 효율이 낮다보니 기업에 보조금을 줘야해서다.
반면 프랑스는 원전 전기 생산량을 전체 비중의 75%까지 늘리고 원자력 기술에 투자했다. 풍력과 태양열 발전은 후순위로 뒀다. 포브스에 따르면 프랑스 전기요금은 독일의 60% 이하다. 전기 생산에 따른 탄소배출량은 독일의 10분의 1에 그친다. 비용은 절반만 쓰고 오염은 90% 적다는 얘기다. 여기다 낮은 생산비 덕분에 프랑스는 전력 수출로 연간 30억유로(약 3조9300억원) 이상을 번다.
영국과 동유럽 각국 등이 원전 확대에 나서는 이유는 또 있다. 원전은 같은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땅도 적게 필요하다. 미국 원자력협회(NEI)에 따르면 미국의 1000MW급 원전 규모는 약 2.6㎢을 조금 웃돈다. 반면 풍력발전소에서 동일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려면 360배, 태양광발전소는 75배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 이미 개발된 지역에선 이같은 규모 발전용지를 찾기 쉽지 않고, 땅을 새로 개발하려면 막대한 삼림을 벌채해야하는 부담이 따른다. 저탄소 발전을 위해 자연환경을 대거 훼손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기후 조건이 까다로운 영향도 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모두 날씨에 크게 의존한다. 바람이 뜸하고 해가 비치지 않을때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선 엄청난 돈을 들여 전력저장소를 마련하거나 개선하고, 스마트그리드 기술에도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IEA는 2050년까지 세계 탄소배출량을 절반까지 줄이기 위해선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이 1200기가와트(GWe) 수준으로 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전세계 전력 공급량의 24% 수준이다. 기존 세계 에너지 공급량의 원자력 비중은 약 13.4%다. IEA는 “원자력 비중을 늘리지 않으면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이 더 어렵고, 더 비싸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은 학계와의 연구 협력도 활발하다. 각 산업 부문에 대한 타당성 연구는 기본이다. EU집행위는 탄소중립 계획의 효율성을 조직심리·행동경제학으로 따져보는 연구도 지원한다.
영국도 기업 등 민간주체와 협의를 통해 탄소중립 계획안을 마련하고 있다. 각 부문마다 탄소배출 현황을 상향식으로 취합해 분석했다. 이를 통해 발전·수송부문은 탄소중립 일정을 지킬 수 있지만, 항공·농업·제조분야는 추가 기술개발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찾아냈다. “어디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알아야 예산을 투입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게 영국 기후변화위원회 설명이다.
이렇다보니 소통과 공론화 절차 없이 정책이 허술하게 급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달엔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수립을 위한 환경부의 국민의견 수렴 절차가 ‘시늉내기’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7일 열린 온라인 국민토론회 일정을 불과 이틀 전 공개했고 별다른 홍보도 없었다. 관련 정책 설문조사도 벌였지만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2050 LEDS 홈페이지에 설문조사 일정을 묻는 질문글에는 3개월이 지나 답변이 달렸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현재 국내 탄소중립은 ‘넷제로’ 구호만 있을 뿐 전략도, 컨트롤타워도 없다”며 “이대로라면 우리 산업 체질에 대한 고려 없이 규제만 속출해 경제에 타격이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각국에서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필요성이 커지면서 탄소중립 계획을 경제 신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세계 각국 '대안 에너지 전략 육성'
주요국들은 수소에너지를 대표적인 대안 에너지로 보고 전략적 육성에 나섰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8월 유럽 수소전략을 발표했다. EU 수소경제 규모를 올해 기준 20억유로(약 2조6500억원)에서 2030년까지 1400억유로(약 185조6100억원)로 키우는 게 목표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 14만 개를 창출할 계획이다. EU집행부는 이날 수소에너지 관련 투자가 2050년까지 최대 4700억유로(약 623조1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EU 집행위는 이를 위해 역내 각국과 에너지·자동차·화학·운송 등 각 분야 기업 총 200개 이상이 참여하는 민관 ‘수소연합’을 결성하기로 했다. EU 예산에선 수소 이니셔티브 재원을 기존의 두 배인 13억유로(약 1조7230억원)로 늘린다.
독일은 한발 앞선 지난 6월 국가 수소경제 전략을 발표했다. 약 90억유로를 들여 수소 인프라를 구축해 수소를 운송·철강·화학 등 주요 산업 에너지원으로 쓰겠다는 게 골자다. 노르웨이도 같은달 수소에너지 육성을 국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발표했다. 미국은 매년 수억달러 규모의 공공·민간투자를 벌이고 있다. 2002년부터 수소 인프라 로드맵인 ‘2030 수소경제 이행비전’을 발표해 대거 투자 사업을 벌였다. 미국 연료전지 및 수소협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수소에너지 시장 규모를 연간 1400억달러로 키워 일자리 70만 개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 미국에선 이와 함께 옥수수나 동물성지방 등 미활용 자원을 원료로 쓰는 신재생에너지 생산 바람도 불고 있다. 정유사 필립스66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정유공장을 세계 최대 규모 바이오디젤 생산공장으로 바꾸는 중이다.
수소에너지도 전기 필요…원자력 부상
일부 주요국은 원자력발전도 늘리고 있다. 원자력 발전 자체도 저탄소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법이고, '전략 에너지' 격인 수소에너지를 생산하는 데에도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산가격이 싸고, 지형이나 기후에 관계없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약 20년만에 원자력발전을 단독으로 다루는 보고서를 내고 “원자력발전이 탄소중립 붐을 타고 1970~1980년대와 비슷하게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2일 미네소타주에 있는 한 원전에 수소에너지 생산설비를 들이는 사업에 1400만달러(약 155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뽑아내는 첫 사례를 내기 위해서다. 미국은 이미 자국 저탄소 전력의 절반이 넘는 비중을 원전에서 생산하고 있다. 최근엔 원전 활용 범위를 수소에너지 생산으로도 확대했다.
영국은 정부가 제조기업 롤스로이스 등 민간 컨소시엄과 손잡고 영국 곳곳에 ‘미니 원전’을 건설한다. 소형 모듈러 원자로(SMR) 최대 16기를 지어 각각 440MW 규모 전기를 공급하는게 목표다.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서포크주에 새 원전을 건설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각국도 원전을 짓기 위해 프랑스, 미국 등과 기술협의 중이다. 에너지 기술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동유럽 각국이 유럽연합(EU)이 제시한 탄소중립 기한을 맞추려면 원전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풍력·태양광 발전은 상대적으로 제약 조건 多
탄소중립 계획을 앞서 내놓은 주요국들이 잇따라 원전 확대에 나서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다. 대표적인게 서로 다른 길을 간 독일과 프랑스 사례다. 독일은 앞서 세계 최초로 신재생에너지를 주에너지원으로 쓰겠다고 공언했다. ‘탈석탄, 탈원전’ 기조도 택했다.이같은 노력에 올 상반기 기준 독일 전력의 48.7%가 풍력, 수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그러나 대가가 비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7년 사이 독일 가정용 전기요금은 150% 수준으로 뛰었다.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용 자체도 비싼데다 효율이 낮다보니 기업에 보조금을 줘야해서다.
반면 프랑스는 원전 전기 생산량을 전체 비중의 75%까지 늘리고 원자력 기술에 투자했다. 풍력과 태양열 발전은 후순위로 뒀다. 포브스에 따르면 프랑스 전기요금은 독일의 60% 이하다. 전기 생산에 따른 탄소배출량은 독일의 10분의 1에 그친다. 비용은 절반만 쓰고 오염은 90% 적다는 얘기다. 여기다 낮은 생산비 덕분에 프랑스는 전력 수출로 연간 30억유로(약 3조9300억원) 이상을 번다.
영국과 동유럽 각국 등이 원전 확대에 나서는 이유는 또 있다. 원전은 같은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땅도 적게 필요하다. 미국 원자력협회(NEI)에 따르면 미국의 1000MW급 원전 규모는 약 2.6㎢을 조금 웃돈다. 반면 풍력발전소에서 동일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려면 360배, 태양광발전소는 75배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 이미 개발된 지역에선 이같은 규모 발전용지를 찾기 쉽지 않고, 땅을 새로 개발하려면 막대한 삼림을 벌채해야하는 부담이 따른다. 저탄소 발전을 위해 자연환경을 대거 훼손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기후 조건이 까다로운 영향도 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모두 날씨에 크게 의존한다. 바람이 뜸하고 해가 비치지 않을때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선 엄청난 돈을 들여 전력저장소를 마련하거나 개선하고, 스마트그리드 기술에도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IEA는 2050년까지 세계 탄소배출량을 절반까지 줄이기 위해선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이 1200기가와트(GWe) 수준으로 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전세계 전력 공급량의 24% 수준이다. 기존 세계 에너지 공급량의 원자력 비중은 약 13.4%다. IEA는 “원자력 비중을 늘리지 않으면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이 더 어렵고, 더 비싸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U, ‘상향식 분석’하고 민간협의 늘려
EU는 그린딜 본격 시행을 앞두고 수개월간 산업계, 학계,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프란스 팀머만 EU집행위 부위원장을 담당으로 임명해 설문조사를 벌이고 전문가 워크샵을 열었다.유럽은 학계와의 연구 협력도 활발하다. 각 산업 부문에 대한 타당성 연구는 기본이다. EU집행위는 탄소중립 계획의 효율성을 조직심리·행동경제학으로 따져보는 연구도 지원한다.
영국도 기업 등 민간주체와 협의를 통해 탄소중립 계획안을 마련하고 있다. 각 부문마다 탄소배출 현황을 상향식으로 취합해 분석했다. 이를 통해 발전·수송부문은 탄소중립 일정을 지킬 수 있지만, 항공·농업·제조분야는 추가 기술개발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찾아냈다. “어디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알아야 예산을 투입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게 영국 기후변화위원회 설명이다.
한국은 폭넓은 협의 '먼 길'
반면 한국은 산업계나 학계 등 민간부문과 정부간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국내 산업지형을 완전히 재편할 수 있는 대형 사안이 자칫 수년짜리 얼치기 계획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산업부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한지 얼마 안 된 때라 이제 기초적 실행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이야기는 내년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이렇다보니 소통과 공론화 절차 없이 정책이 허술하게 급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달엔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수립을 위한 환경부의 국민의견 수렴 절차가 ‘시늉내기’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7일 열린 온라인 국민토론회 일정을 불과 이틀 전 공개했고 별다른 홍보도 없었다. 관련 정책 설문조사도 벌였지만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2050 LEDS 홈페이지에 설문조사 일정을 묻는 질문글에는 3개월이 지나 답변이 달렸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현재 국내 탄소중립은 ‘넷제로’ 구호만 있을 뿐 전략도, 컨트롤타워도 없다”며 “이대로라면 우리 산업 체질에 대한 고려 없이 규제만 속출해 경제에 타격이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