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리테일은 올초 신사업추진실을 신설했다. ‘유통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추진한다는 ‘모토’를 내걸었다. 핵심 전략 중 하나가 제휴였다.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10월 미국의 식물성 단백질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에 이마트와 함께 참여한 게 대표적이다. 23일엔 농협하나로유통과도 상품 공동 소싱(구매) 등의 분야에서 함께하기로 하고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미래 먹거리’ 화두로 어디든 제휴

GS리테일 광폭 행보…이번엔 농협과 제휴
GS리테일은 신사업추진실 신설 후 네 곳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무인화, 모빌리티, 데이터, 가격 경쟁력 확보 등 미래 유통의 핵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7월엔 GS25의 상품을 로봇을 통해 배송하는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LG전자와 손을 잡았다. ‘로봇 배송’은 유통업체들의 공통된 지향점이다. 10월엔 신한카드와 ‘데이터 동맹’을 맺었다. GS리테일의 데이터경영부문이 주도한 제휴로 유통과 카드 데이터를 결합한 첫 시도다.

지난 10일엔 그룹 내 GS홈쇼핑과의 합병 계획(내년 7월 예정)도 발표했고, 그 후 KT와는 인공지능(AI) 기반의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협력 관계를 맺었다. 양사는 향후 전기차 기반의 물류·배송망을 구축하는 데 힘을 합치기로 했다. GS리테일은 케이뱅크의 주주이기도 하다.

상품본부가 기획한 이날 농협하나로유통과의 제휴는 가격 경쟁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범 사업으로 양사는 오뚜기 진라면 30만 개를 공동 구매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제조업체와의 협상에서 가격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며 “원가 구조를 혁신해 이를 새로운 상품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적 제휴는 아니지만 올 7월 GS리테일이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에 입점한 것 역시 GS리테일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사례 중 하나다. 네이버는 자신의 취약점인 신선식품 판매를 강화하기 위해 오프라인 업체에 손을 내밀었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은 이를 거부했으나 GS리테일은 ‘디지털 경쟁자’와 과감히 손을 잡았다.
GS리테일 광폭 행보…이번엔 농협과 제휴

허 부회장의 디지털 마인드 주목

GS리테일의 변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GS리테일은 올 3분기(연결기준)까지 매출 6조7014억원, 영업이익 2269억원을 거뒀다. 작년 대비 영업이익은 20% 증가했으나 매출은 1%가량 줄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사업 발굴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반려동물 사업 확대가 대표적이다. GS리테일은 2018년 반려동물용품 쇼핑몰인 펫츠비에 투자해 현재 최대주주 위치에 있다. 이달 중순엔 펫츠비를 포함해 GS리테일 산하에 있던 3개 반려동물 관련 업체를 하나로 합쳤다. GS홈쇼핑과의 합병으로 관련 사업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GS홈쇼핑도 펫프렌즈, 바램시스템 등 펫사업에 꾸준히 투자를 진행 중이다. 양사의 반려동물 사업을 통합해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GS리테일의 복안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소스 회사 등 먹거리 투자와 배송 혁신은 신사업추진실에서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거나 투자를 진행 중인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의 유기농 제품 업체 스라이브마켓과 제휴해 올 9월 ‘달리살다’라는 유기농 전문몰을 열기도 했다. 8월엔 일반인 배달 서비스인 ‘우딜’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유통업계가 GS리테일의 변신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사진)의 ‘스타일’ 때문이다. 그는 ‘오너’와 전문 경영인을 통틀어 유통가에선 드문 공대 출신 기업인이다. 고려대 전기공학 출신으로, 미 시러큐스대학원에선 전자계산학을 전공했다.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다른 유통업체들과는 디지털 전환 속도에서 차이가 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GS리테일은 2018년 무인형 편의점을 열었고, 올 6월엔 드론 배송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시연하기도 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