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원청사를 점거하고 집단행동을 벌이더라도 원청업체는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직접 근로관계가 없는데도 내려진 판결인 데다 두 달여 만에 같은 판결이 또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대법원 제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경비용역업체에 소속된 특수경비원 박모씨 등에 대한 판결에서 "공사는 직접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 근로자의 근로의 결과를 향유해 왔으므로 노조 활동을 수인할 의무가 있다"는 2심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박씨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보안 검색 및 순찰업무를 담당하는 특수경비용역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에 소속돼 있다. 박씨 등은 2014년 공사가 경비용역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신규 용역업체가 기존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승계하지 않는데 반발해 집단행동을 했다. 박씨등 조합원 80여 명은 2014년 9월 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30~40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비정규직 과다, 인천공항 제2의 세월호' 등의 문구가 기재된 피켓 시위를 벌여 공동퇴거불응,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됐다.

◆하청 근로자의 집단행동... 원청이 수인해야

2015년의 1심과 2016년의 2심은 박씨 등 근로자들에 대해 유죄로 판결했다. 이 과정에서 2심 인천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비록 하청업체 소속 노조의 파업이지만 원청업체인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이를 수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공사가 노동조합법상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고 이를 대법원이 그대로 인용했다.

다만, 대법원은 "여객터미널에서 건장한 성인 남성 80명이 줄지어 서있는 행위가 공항 이용객들에게 위압감과 불안감을 준 데다, 안전과 보안이 특히 강조되는 공항 시설에서 임의로 집회를 한 것은 원청업체의 '수인 의무'를 벗어나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박씨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다른 시위 참가자들에게는 300만원에서 10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지난 9월 3일 한국수자원공사 사건에서 나온 대법원 판단과 같은 내용이다. 한국수자원공사와 계약을 맺은 청소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소속 업체와 단체교섭을 벌이다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원청인 수자원 공사를 점거해 확성기 시위를 벌이고 공사 건물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등의 행위로 업무방해, 퇴거불응으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수자원공사, 인국공... 잇따른 대법원 판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도급인(수자원공사)은 수급인(청소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와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일정한 이익을 누리고 사업장을 근로 장소로 제공"했으므로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쟁의 행위로 인해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회통념상 용인해야 한다"고 판결 이유를 제시했다.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 사건에 대한 판결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최근의 대법원 판결을 놓고 노동계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동계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강조하며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노동권 쟁취 투쟁을 계속 확대해 가는 추세기 때문이다.

최종석 전문위원/좋은일터연구소장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