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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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이 26일 계열사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한다. 신세계 백화점 부문(27일 혹은 30일) 정도를 제외하면 유통 대기업 중 가장 늦은 인사다. 코앞으로 인사가 다가왔지만 24일까지도 그룹 내 CEO(최고경영책임자)들조차 ‘감’을 잡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보안이 지켜지고 있다. 롯데 역사상 이처럼 ‘조용한 인사’는 처음이라는 말들이 나올 정도다.

이날 오전 롯데지주 직원들 사이에선 ‘오늘 이사회를 연다’는 풍문이 돌았다. 24일 지주를 시작으로 26일까지 계열사별로 연쇄 인사를 한다는 게 풍문의 내용이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26일에 이사회를 열 예정”이고 “현재 방역 조치 격상으로 이사회 시 거리두기를 어떻게 지킬 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지주의 일반 직원들조차 이사회 날짜를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보안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인사안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정보가 샐 만한 곳들이 막혀 있다는 것이 첫 번째다. 작년만해도 롯데는 연말 정기 인사를 앞두고, 네댓개의 인사 시나리오가 돌아 다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고 자부하는 내부 인사들이 각자 자신만의 관점에서 인사 방향을 예측한 일종의 ‘찌라시’였다. 롯데의 이 같은 인사 관행은 매년 되풀이됐다. 롯데는 8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대기업이다. 정보가 샐 틈이 많다. 특히 롯데지주는 풍문의 진원지였다. 전체 계열사를 관리하고, 미래 전략을 짜는 역할을 맡은 터라 정보가 집중됐다.

하지만 올해는 롯데지주에서조차 인사안과 관련해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지주 관계자는 “숨 막힐 정도로 조용하다”며 “이렇게까지 사전에 아무 얘기도 나오지 않는 인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룹 내부에선 롯데의 ‘2인자’로 불리던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8월13일 용퇴하는 등 지주에 주어져 있던 권한이 4개 사업 부분(BU)으로 이관된 것이 ‘조용한 인사’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안을 들고 있는 사람은 최종 결제권자인 신동빈 회장과 초안을 만든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 2명 뿐이기 때문에 말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송 부회장은 신 회장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은 이른바 자신의 가방을 맡기는 측근 비서를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굳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을 꼽자면 송 부회장인데 송 부회장은 오랫동안 인사 업무에 있던 분이라 입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런 해석이라면 지금의 고요는 폭풍 전야의 정막인 셈이다. 정반대의 해석도 나온다. 예상과 달리 이번 정기 인사가 시기를 약 한 달 정도 앞당겼을 뿐, CEO급 인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보’받은 이들이 드물어 말이 미리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추론이다.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날까지 4대 BU장과 각 계열사 CEO들 모두 정상적으로 근무 중이다.

이와 관련해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임원 숫자를 대폭 줄이는 것은 기정사실”이라면서도 “BU장 등 핵심 경영진은 임기를 시작한 지 채 2년도 안된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유임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 BU장을 맡고 있는 강희태 롯데쇼핑 부회장만 해도 롯데자산개발 대표를 겸직하고 있고, 유니클로까지 책임지고 있다. 롯데자산개발은 중국 사업 등 실적 악화로 중국 심양 콤플렉스 등을 어떻게 처리할 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명예퇴직, 계열사 원대 복귀 등 구조조정도 한창 진행 중이어서 사실상 수장을 바꾸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롯데쇼핑 이사회 소속 관계자는 “강 부회장은 워낙 꼼꼼하게 경영을 챙기는 스타일이어서 신 회장과도 호흡이 잘 맞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롯데쇼핑 사내이사 중 누군가 바뀔 것이라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롯데쇼핑 사내이사는 강희태 부회장을 비롯해 장호주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황범석 백화점사업부문 대표다.

강희태 부회장을 비롯해 4대 BU장 모두 임명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BU 수장이 교체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부회장과 김교현 화학BU장, 이영호 식품BU장은 2019년 3월에 임명됐다. 이봉철 호텔&서비스BU장은 올 3월에 선임됐다. 그룹 관계자는 “인사 발표 하루 전인 25일쯤 통보가 나갈 것으로 안다”며 “대략적인 윤곽은 하루 전에야 어느 정도 그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BU장 유임, 임원 대폭 구조조정’이다. BU 책임제가 도입된 만큼 BU장들은 자신들의 손에 칼을 쥐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소문만 무성한 상황이긴 하지만 일부 계열사는 실적에 따라 임원 자리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