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과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공공부문에서라도 노동계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대신 생산성 향상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호봉제 임금체계를 개편해 민간기업으로의 확산을 꾀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2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발표한 노정 합의문에는 노동이사제 도입은 기정사실화한 반면 임금체계 개편은 추후 논의과제로 돌렸다. “노동계에 현찰 내주고 기한 없는 어음만 받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경사노위 합의에 따라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이르면 내년 도입될 전망이다. 국회에는 이미 김주영, 박주민,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운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야당의 반대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지난 총선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21대 국회 통과는 시간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입법이 이뤄지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공공기관에 빠르게 퍼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경사노위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8월 페이스북에 “공기업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고려한다면 한번 손들고 해보고 싶다. 성공사례가 되든 실패사례가 되는 한번 그 길을 가보고 싶다”고 썼다. 김 사장은 2018년 8월 전력노조와 ‘노동이사제 등 노동자의 경영참여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단체협약을 맺기도 했다. 한전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한국수력원자력, 남동·동서·남부·서부·중부발전 등 한전 자회사의 제도 도입은 예정된 수순이다.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의 조속한 개정을 건의하는 한편 법 개정이 필요없는 ‘근로자대표 이사회 참관제’ 도입도 독려했다. 해당 기관 이사회 의장이 허가하면 의견 개진도 가능하도록 했고, 노조 추천 인사를 비상임이사에 선임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줬다.

이에 따라 공운법 개정과 별개로 ‘근로자대표 이사회 참관제’를 도입하는 공공기관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 기획재정부가 노동이사제 도입 전 단계로 시행한 근로자 참관제는 2018년 12월 공공기관 9곳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29곳, 올해 8월 기준 63곳에서 시행하고 있다.

당초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는 노동계 요구인 노동이사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구성된 회의체다. 하지만 임금체계 개편은 ‘노력 조항’으로 남기면서 “지속가능한 공공기관 임금제도 관련 후속 논의를 위한 노정 대화를 지속한다”고 했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향후 논의는 내년 4월 출범 예정인 2기 공공기관위원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