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MRI 건보 적용 연기…재정 악화에 '문재인 케어' 급제동
척추 자기공명영상(MRI), 심장 초음파, 근골계 MRI 등 주요 비급여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계획이 줄줄이 연기됐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과속 추진으로 건보 재정이 악화된 데 따른 ‘후폭풍’으로 풀이된다. 건보 재정은 올 상반기에만 1조원 넘는 적자를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의료계의 어려움이 가중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본지 11월 26일자 A12면 참조

보건복지부는 27일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2021년도 시행계획안’을 발표했다.

계획엔 올 하반기 시행 예정이었던 척추 MRI·심장 초음파 검사에 대한 급여화(건보 적용)를 내년 하반기로 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복지부는 최근 건정심 참가 기관 대상 간담회에서 척추 MRI 급여화를 내년으로 미룬다고 밝혔는데, 심장 초음파마저 연기된 것이다.

건강보험종합계획상 내년에 추진하게 돼 있던 근골계 MRI·초음파 등의 건보 적용은 2022년으로 늦춰졌다.

정부는 의료계와의 협의가 지연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의료기관의 업무와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급여화 관련 논의가 차질을 빚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문재인 케어의 과속이 건보 재정 적자 급증 등으로 제동이 걸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케어는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서비스를 건보로 지원하겠다는 정책이다. 막대한 지출과 이에 따른 재정 적자가 불가피하다. 2018년 건보 재정수지는 8년 만에 적자(-1778억원)를 기록했고 작년엔 적자 규모가 2조8243억원으로 불어났다.

'文케어' 과속 후폭풍…상반기만 건보 1.3兆 적자
화상환자용 '인공진피' 건보 적용…의료비 168만원→3만5000원

올해 건강보험 재정 상황은 더 심각하다. 건보 재정은 상반기엔 흑자, 하반기엔 적자를 기록하는 게 보통이다. 의료기관들이 건보 급여 청구를 하반기에 몰아서 하는 경향 등이 있어서다. 연간 적자가 3조원에 육박했던 작년에도 상반기엔 866억원 흑자였다.

하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1조2814억원 적자가 났다. 신규 건보 적용 항목에 대한 과잉 진료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코로나19로 국민의 소득 여건이 악화되면서 보험료 수입이 쪼그라든 탓이다. 만약 올 하반기 건보 재정 적자가 작년 하반기(약 2조9000억원) 수준만 기록해도 연간 적자는 4조원이 넘는다. 당초 적자 예상치(2조7275억원)를 크게 넘어선다. 정부가 건보 보장성 확대의 속도 조절에 나선 이유가 여기 있다.

기존 급여화 항목의 범위도 축소되고 있다. 작년 10월 시행한 뇌 MRI 검사의 재정 지출이 당초 예상의 1.7배를 웃돌자 올 4월 혜택을 대폭 줄인 게 대표적이다.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 MRI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30~60%에서 80%로 높였다.

정부는 수입 측면에서도 재정 건전화 노력을 강화한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2021년도 시행계획안에 ‘건강보험법 등 개정을 통한 정부 지원 확대 추진’을 주요 과제로 명시했다. 건보 국고지원율을 현행 13~14%보다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치겠다는 얘기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건보 재정 건전화를 위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모든 의료서비스에 건보를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적정 의료보장을 추구하는 쪽으로 정책목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선 화상·창상 환자에 대한 건보 지원 확대 방안도 논의됐다. 복지부는 화상 및 창상 환자의 피부 재건 치료에 널리 사용되는 ‘인공진피’를 필수급여로 지정해 내년 4월부터 건보를 적용키로 했다. 인공진피(다빈도 사용 40~80㎠ 미만 기준) 2개를 사용해 수술하는 경우 지금은 168만원의 치료재료 비용 부담이 발생하지만 건보 적용 이후엔 3만5000원으로 부담이 줄어든다. 환자 약 9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복지부는 내다봤다.

골다공증 및 폐암 관련 신약 2개도 건보 혜택을 주기로 했다. 폐경 후 여성 골다공증 치료제인 ‘이베니티주프리필드시린지’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인 ‘비짐프로정 15·30·45㎎’이다. 골다공증 신약은 투약 비용이 297만원에서 89만원으로, 폐암 신약은 1170만원에서 58만원으로 줄어든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