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프'에도 텅텅 빈 뉴욕 쇼핑가…온라인만 하루 매출 10조[조재길의 지금 뉴욕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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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맨해튼의 쇼핑가 스케치
완전히 사라진 메이시스 줄서기
입장 제한한 H&M엔 직원 더 많아
코로나19가 뒤바꿔놓은 일상
감염 우려없는 온라인만 '최대'
비대면 경제 활동, 정착 가능성
완전히 사라진 메이시스 줄서기
입장 제한한 H&M엔 직원 더 많아
코로나19가 뒤바꿔놓은 일상
감염 우려없는 온라인만 '최대'
비대면 경제 활동, 정착 가능성
미국에서 최대 쇼핑 시즌의 시작점은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프라이데이입니다. 이날부터 다음달 크리스마스까지 약 한 달간 이어지죠. 해마다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각 매장에 먼저 들어가려고 밤을 새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27일(현지시간) 뉴욕 쇼핑거리의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거리에서 쇼핑객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이렇게 바꿔놓은 겁니다.
뉴욕의 대표 쇼핑 시설은 맨해튼 34번가에 위치한 메이시스 백화점입니다. 1924년부터 추수감사절마다 대규모 퍼레이드를 진행해온 곳이죠. 16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입니다. 뉴욕 백화점들은 보통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영업하는데, 블프를 맞은 이날은 오전 5시에 개장했습니다. 백화점 내부에선 아무리 코로나 사태라지만 쇼핑객이 적지 않게 몰릴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개장 직후는 물론 오전 8~9시에도 쇼핑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매장 입구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는 직원 클레어 씨는 “아마 오후는 돼야 사람들이 좀 들어올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여성의류 매장을 담당하는 직원인 앤서니 씨는 “작년과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며 “코로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모든 걸 바꿔놨다”고 놀라워하더군요.
백화점 내부에 열을 측정하는 직원을 따로 배치하지 않았지만 청소원이 정문 손잡이 등을 끊임없이 소독했습니다. 직원과 쇼핑객 중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인근의 저가형 대형 의류 매장인 H&M 빌딩은 더 한산했습니다. H&M의 최대 할인 폭이 메이시스(최대 65%)보다 낮은 30%인데다 평소에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판매했던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습니다.
H&M 빌딩 정문엔 입장객 수를 최대 526명으로 제한한다고 써 붙여놨는데, 오전 9시 기준 1층 전체에서 쇼핑객은 3~4명에 불과했습니다. 직원들이 더 많더군요. H&M처럼 저가형 잡화를 파는 ‘노드스트롬 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긴 줄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계산대가 아예 텅 비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블랙프라이데이 분위기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대부분이 ‘쇼핑 분위기가 작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더군요. 올드네이비 건물엔 별도로 ‘컨비니언스 스폿’(convenience spot) 장소가 크게 설치됐습니다. 온라인으로 쇼핑한 사람들이 쉽게 상품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든 곳입니다. 여기선 옷이나 신발 사이즈를 직접 맞춰보고 바로 교환할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과 대면 쇼핑 사이에서 접점을 찾은 겁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매장에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피팅룸을 아예 막아놨었는데, 블프 대목인 이날은 다시 열었더군요. 다만 피팅룸을 이용하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쇼핑객이 많지 않아 굳이 거리두기를 강조할 필요가 없어 보이긴 했습니다만. 올드네이비의 직원 블레이크 씨는 “올해는 월요일인 23일부터 최대 50%의 블프 할인을 먼저 시작했는데 실제 매장을 찾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며 “모바일로 다 바뀐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례적으로 매장 밖에 긴 줄이 생겼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게임기 및 관련 용품 판매 전문점인 게임스탑이었지요. 오전 7시 개장을 앞두고 20~30m의 줄이 있더군요. 매장 밖엔 한 번에 19명만 입장할 수 있다는 표지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이 줄은 10여분 만에 바로 사라졌습니다. 매장 직원이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신제품이 동 났다”고 외친 직후입니다. 이 직원은 “플스5는 2개, 엑스박스는 7개밖에 준비하지 못했다”고 사과했습니다. 이 긴 줄은 게임기 등을 할인 받으려는 게 아니라 플스5 등 신제품을 구입하려는 인파였던 겁니다.
길을 지나다 플스5를 2개 구입했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맨해튼 북쪽 브롱스에서 왔다는 로저 씨는 “메이시스 백화점 밖에서 밤새 기다려 플스5를 2개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며 “과거처럼 할인을 노리고 줄을 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플스5를 개당 544달러에 샀다고 합니다.
인근 대형 할인점인 타겟 전자 매장의 직원 알렉스 씨는 “플스5는 나온 지 얼마 안된 신상품이어서 어디를 가도 구입하기 어렵다”며 “블프에 맞춰 소니가 소량 판매를 개시한 것일 뿐 블프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뉴욕 쇼핑가 분위기는 썰렁했지만 온라인은 정반대였습니다. 엄청난 쇼핑 열기가 있었지요. 세계 최대의 ‘부자 나라’인데, 연말 대목을 그냥 지나칠 순 없겠지요.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인 어도비의 마케팅 정보분석 자료(어도비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블프 당일의 미 온라인 판매액이 90억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우리 돈으로 10조원어치가 하루에 팔린 겁니다.
작년 같은 날과 비교하면 21.6% 급증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쇼핑이 전체의 40%를 차지했지요.
미국 매장들은 금요일의 블프가 끝났는데도 할인 기간을 하루이틀 연장하거나, 다음주 월요일인 ‘사이버 먼데이’ 할인을 앞당겨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사태 여파로 부진했던 매출을 끌어올리고 재고를 다 털어버리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사람들은 점점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져 갑니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뉴욕의 쇼핑가 풍경. 내년에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지 궁금합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27일(현지시간) 뉴욕 쇼핑거리의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거리에서 쇼핑객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이렇게 바꿔놓은 겁니다.
뉴욕의 대표 쇼핑 시설은 맨해튼 34번가에 위치한 메이시스 백화점입니다. 1924년부터 추수감사절마다 대규모 퍼레이드를 진행해온 곳이죠. 16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입니다. 뉴욕 백화점들은 보통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영업하는데, 블프를 맞은 이날은 오전 5시에 개장했습니다. 백화점 내부에선 아무리 코로나 사태라지만 쇼핑객이 적지 않게 몰릴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개장 직후는 물론 오전 8~9시에도 쇼핑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매장 입구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는 직원 클레어 씨는 “아마 오후는 돼야 사람들이 좀 들어올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여성의류 매장을 담당하는 직원인 앤서니 씨는 “작년과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며 “코로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모든 걸 바꿔놨다”고 놀라워하더군요.
백화점 내부에 열을 측정하는 직원을 따로 배치하지 않았지만 청소원이 정문 손잡이 등을 끊임없이 소독했습니다. 직원과 쇼핑객 중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인근의 저가형 대형 의류 매장인 H&M 빌딩은 더 한산했습니다. H&M의 최대 할인 폭이 메이시스(최대 65%)보다 낮은 30%인데다 평소에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판매했던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습니다.
H&M 빌딩 정문엔 입장객 수를 최대 526명으로 제한한다고 써 붙여놨는데, 오전 9시 기준 1층 전체에서 쇼핑객은 3~4명에 불과했습니다. 직원들이 더 많더군요. H&M처럼 저가형 잡화를 파는 ‘노드스트롬 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긴 줄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계산대가 아예 텅 비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블랙프라이데이 분위기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대부분이 ‘쇼핑 분위기가 작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더군요. 올드네이비 건물엔 별도로 ‘컨비니언스 스폿’(convenience spot) 장소가 크게 설치됐습니다. 온라인으로 쇼핑한 사람들이 쉽게 상품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든 곳입니다. 여기선 옷이나 신발 사이즈를 직접 맞춰보고 바로 교환할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과 대면 쇼핑 사이에서 접점을 찾은 겁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매장에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피팅룸을 아예 막아놨었는데, 블프 대목인 이날은 다시 열었더군요. 다만 피팅룸을 이용하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쇼핑객이 많지 않아 굳이 거리두기를 강조할 필요가 없어 보이긴 했습니다만. 올드네이비의 직원 블레이크 씨는 “올해는 월요일인 23일부터 최대 50%의 블프 할인을 먼저 시작했는데 실제 매장을 찾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며 “모바일로 다 바뀐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례적으로 매장 밖에 긴 줄이 생겼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게임기 및 관련 용품 판매 전문점인 게임스탑이었지요. 오전 7시 개장을 앞두고 20~30m의 줄이 있더군요. 매장 밖엔 한 번에 19명만 입장할 수 있다는 표지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이 줄은 10여분 만에 바로 사라졌습니다. 매장 직원이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신제품이 동 났다”고 외친 직후입니다. 이 직원은 “플스5는 2개, 엑스박스는 7개밖에 준비하지 못했다”고 사과했습니다. 이 긴 줄은 게임기 등을 할인 받으려는 게 아니라 플스5 등 신제품을 구입하려는 인파였던 겁니다.
길을 지나다 플스5를 2개 구입했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맨해튼 북쪽 브롱스에서 왔다는 로저 씨는 “메이시스 백화점 밖에서 밤새 기다려 플스5를 2개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며 “과거처럼 할인을 노리고 줄을 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플스5를 개당 544달러에 샀다고 합니다.
인근 대형 할인점인 타겟 전자 매장의 직원 알렉스 씨는 “플스5는 나온 지 얼마 안된 신상품이어서 어디를 가도 구입하기 어렵다”며 “블프에 맞춰 소니가 소량 판매를 개시한 것일 뿐 블프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뉴욕 쇼핑가 분위기는 썰렁했지만 온라인은 정반대였습니다. 엄청난 쇼핑 열기가 있었지요. 세계 최대의 ‘부자 나라’인데, 연말 대목을 그냥 지나칠 순 없겠지요.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인 어도비의 마케팅 정보분석 자료(어도비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블프 당일의 미 온라인 판매액이 90억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우리 돈으로 10조원어치가 하루에 팔린 겁니다.
작년 같은 날과 비교하면 21.6% 급증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쇼핑이 전체의 40%를 차지했지요.
미국 매장들은 금요일의 블프가 끝났는데도 할인 기간을 하루이틀 연장하거나, 다음주 월요일인 ‘사이버 먼데이’ 할인을 앞당겨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사태 여파로 부진했던 매출을 끌어올리고 재고를 다 털어버리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사람들은 점점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져 갑니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뉴욕의 쇼핑가 풍경. 내년에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지 궁금합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