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통일부 관계자에 따르면 통일부는 다음달 중으로 북한에 쌀 5만t을 지원하기 위해 WFP에 선지급한 사업관리비 1177만달러(약 140억원)을 환수하는 방향으로 절차를 진행중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북한의 식량 부족 사정을 고려해 WFP를 통해 국내산 쌀 5만t을 지원하는 대북 지원사업을 결정했다. 사업 비용 구조는 쌀 구입비(약 273억원)와 WFP에 선지급한 사업관리비로 이뤄졌다.
대북지원사업은 지난해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북한이 지난해 7월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으며 쌀 수령을 거부하며 무산됐다. 쌀 구입비 예산은 지난해 집행되지 못한 채 올해로 이월처리 됐지만 운송비·장비비·모니터링비 등을 포함한 사업관리비는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WFP에 선지급된 상태다.
통일부는 이미 한 차례 이월한 쌀 구입 예산을 내년으로 다시 이월할 수 없어 WFP에 선지급한 사업관리비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제기구가 판단을 내리기까지 거칠 단계가 많아 시간이 걸리고 있는데 최종 판단이 나오면 구체적인 환수날짜도 나올 것”며 “현재로서 남은 변수는 북한의 태도 변화 한 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돌연 쌀 지원을 받겠다고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한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국경을 봉쇄하고 외부 물자 지원도 일절 안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7일 “(북한이) 코로나19 때문에 외부 물자를 안 받는 편집증이 심하다”며 “중국이 제공하기로 한 쌀 11만t도 대련항에서 반입하지 않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북한의 거듭된 지원 거부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대북 지원을 계속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6일 WFP와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CPE)이 공동으로 주최한 ‘제로 헝거 혁신 정책 회의’에 참석해 “1984년 서울이 큰 홍수피해를 입은 가운데 북한이 우리 이재민에게 구호 물품을 지원했던 사례를 기억한다”며 대북 인도 지원사업이 일방적인 시혜가 아닌 상생의 차원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장관은 이어 “코로나로 인해 작물의 생산·공급 체계가 무너졌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더해져서 극심한 기근과 식량난이 닥칠 것을 경고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자신은 물론, 같은 민족이자 동포이며, 수해·코로나·제재라는 3중고 속에 경제와 민생의 어려움에 처해있을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거듭된 대북 지원 사업에 ‘이중 잣대’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29일에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 9월 통일부의 북한 인권단체 2곳의 법인 설립 허가 취소와 25곳의 사무검사에 대해 한국 정부에 발송한 혐의서한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서한에는 통일부가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한 두 단체를 ‘탈북민이 설립한 단체’로 규정하며 국내 탈북민의 인권에 대한 우려가 담겼다.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서해상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이 모두 올해 일인데 36년 전 일을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27일 논평을 통해 “도를 넘는 ‘북한 바라기’”라며 “36년 전 북한의 지원은 기억하면서 불과 3개월 전 북한의 만행(공무원 피살)은 왜 기억 못하나”라고 이 장관을 비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