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中 주도 세계질서의 예고편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중국이 채 부상하기 전부터도 국제정치학자들은 이 가상의 질문을 던져왔다. 주로 국제정치경제 분야에 포진한 제도주의자들은 중국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촘촘한 상호의존의 틀 속에 편입되고 따라서 자유주의적 규범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들은 설사 중국이 강대국이 되더라도 자유주의 질서 자체를 위협할 수는 없을 것으로 봤다. 반면 전통적인 국제관계론 분야에 포진한 현실주의자들은 만에 하나 비민주적인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할 경우 자유주의적 질서는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현실주의자들의 우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최근 중국이 호주에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중국이 앞으로 약소국을 어떤 식으로 대할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된다.

호주는 미국보다 7년 앞선 1972년에 중국과 수교해 1차산품을 수출하고 중국으로부터 공산품을 수입하는 상호호혜적 관계를 맺어왔다. 2015년에는 자유무역협정(FTA)도 체결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주요국 정상들과의 통화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기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한 이후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중국은 5월부터 호주산 소고기 수입을 제한했고, 보리에도 80% 관세를 부과했다가 아예 수입을 금지했다. 호주산 바닷가재, 목재, 석탄도 위생, 환경, 품질 등의 이유로 통관이 거부되거나 지연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5억달러어치에 달하는 약 570만t의 호주산 석탄이 배 66척에 실린 채 마냥 통관을 기다리고 있다. 수출의 40%를 중국이 수입하는 호주산 와인에 대해서도 반덤핑 조사에 착수해 11월 28일부터 107%에서 212%에 달하는 ‘임시’ 관세를 무기한 부과하기 시작했다.

주목할 것은 중국이 호주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과거 중국은 다른 나라에 불만이 있을 경우 “상호신뢰를 증진할 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한 뒤 해당국이 중국의 진의를 알아차리게 했다. 하지만 최근 호주에는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호주 주재 중국 대사관 관계자는 11월 17일 일부 호주 언론을 상대로 양국 관계 현안에 대해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호주가 중국에 지은 14가지 ‘죄상’을 적은 문서를 전달했다. 문서에는 호주 정부가 빅토리아 주정부가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것을 막은 것을 비롯해 코로나 기원에 대한 독립적 조사를 요구하고, 중국 기업의 호주 인프라·농업 분야 투자를 막았다고 적시했다. 또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호주의 5G(5세대)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으며, 싱크탱크에 반중(反中) 연구 자금을 지원하고, 대만·홍콩·신장위구르 문제에 대한 국제포럼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 대사관 관계자는 “중국은 화가 나 있다”며 “당신들이 중국을 적으로 돌리면 중국도 당신들을 적으로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이렇게 호주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호주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호주는 수출의 3분의 1을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대(對)중국 수출액은 1900억달러에 달한다.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경위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모리슨 총리가 말하자마자 중국 관영언론 환구시보의 편집장은 “호주는 중국 신발 밑에 달라붙어 있는 껌과 같으므로 가끔 돌에다 문질러야 한다”고 했다. 환구시보는 2017년 12월에도 호주를 “중국의 발바닥에 붙어있는 껌”이라고 한 적이 있다.

호주는 어느 모로 보나 선진국이고 중견국가(middle power)다. 호주도 이럴진대 그보다 못한 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중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중국에는 정경분리가 통하지 않는다. 수모를 겪지 않으려면,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끼리 똘똘 뭉쳐 맞서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북송의 문장가 소순은 육국론(六國論)에서 전국7웅 가운데 여섯 나라가 파멸한 것은 스스로 먼저 진에 굽히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절대 적의 오랜 위세에 겁박당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