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왼쪽)과 김정호 자산관리사가 25일 서울 신교동 푸르메선터에서 만나 기부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왼쪽)과 김정호 자산관리사가 25일 서울 신교동 푸르메선터에서 만나 기부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65·왼쪽)과 김정호 오렌지라이프 명예이사(42·자산관리사·오른쪽)는 모두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박 회장이 30년 전 설립한 천지세무법인은 매출 기준 업계 6위로 올라섰고, 김 이사는 고소득 자산관리사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글로벌 단체 ‘백만달러 원탁회의(MDRT)’의 최고등급(TOT) 회원이다. TOT 회원은 연 수입액이 최소 4억7096만원(2020년 기준)이 넘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부족할 게 없는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점이다. 박 회장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홀어머니와 둘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아 1974년 서울로 올라왔을 때 그의 손엔 단돈 2000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김 이사는 이혼한 부모에게서 네 살 때 버려졌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여덟 살 이후로는 성인이 될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랐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낸 이들이 지난달 사회환원을 위해 뜻을 모았다.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자선단체 푸르메재단에 1억원씩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기부 방식은 생명보험료 납입을 통한 유산기부를 택했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보험사에 7년 동안 납부하면,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 푸르메재단에 1억원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박 회장은 다달이 약 100만원을, 나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김 이사는 70만원 안팎의 금액을 보험료로 낸다.

최근 서울 신교동 푸르메재단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두 기부자는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가 보다 확산하길 바라는 마음에 유산기부 방식을 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기부 이전에도 푸르메재단에 모두 1억5700만원가량 기부해온 박 회장은 “기부에 뜻이 있어도 한꺼번에 큰돈을 기부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번 기부를 통해 조금씩 보험료를 내는 방식으로도 사회에 큰돈을 환원할 수 있다는 점이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2015년 푸르메재단에 1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5년간 분할 납부해왔는데, 최근 분할납부가 모두 끝났다”며 “또 다른 기부를 생각하던 중 박 회장님과 뜻이 맞아 함께 유산기부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 기부자는 푸르메재단 말고도 사회 곳곳에 재산을 환원해왔다. 박 회장과 김 이사 모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 기부한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소사이어티’의 회원이기도 하다. 꾸준히 사회에 기부해온 계기를 묻자 박 회장은 “아무리 나라가 부유해져도 재정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보다 많은 사람이 기부에 동참해 함께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했다.

김 이사는 기부 계기를 설명하면서 ‘개천의 용’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청년들이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다’며 좌절감에 빠져 있는데, 저는 용이 반드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기 있잖아요. 이번 기부가 그런 희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정의진/사진=신경훈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