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악화 기업이 인력부족 기업과 '종업원 공유'
코로나19로 이종업종간 출향 본격화
전자제품 판매 대리점 노지마는 일본 양대 항공사인 전일본공수(ANA)과 일본항공(JAL)으로부터 직원 300명을 출향 받기로 했다. 호텔 체인 도요코인으로부터도 300명을 임대 받는 협상을 벌이고 있어 '빌려오는' 종업원 수는 600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달 중순부터 약 1주일간 연수를 거쳐 영업점 판매 담당이나 콜센터 업무를 맡길 계획이다. JAL의 경우 출향에 동의한 공항 근무 직원이 대상이다. 출향을 나가더라도 월 급여는 수당을 포함해 전액 이전과 같은 수준을 보장받는다. 기본적으로 노지마가 지급하고 부족분을 JAL이 보전하는 구조다. 계약기간은 6개월~1년이다.
본사 기능을 도쿄에서 간사이 지방의 섬인 효고현 아와지시마로 옮겨 화제가 된 인재파견 전문기업 파소나그룹도 12월부터 항공, 여행, 호텔업계 등으로부터 출향자를 모집한다. 임대받은 직원은 아와지시마의 파소나 본사에서 영업과 인사 업무를 담당한다. 당초 300명 규모를 예상했지만 상황에 따라 1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출향은 기존 기업의 소속을 유지한 채 새(출향) 기업과 복수의 고용계약을 맺고 새 회사 직원과 같은 대우를 받는 제도다. 양쪽 회사와 복수의 고용계약을 맺는 점이 소속은 파견회사인 채로 원청기업으로부터 업무 명령만 받는 파견과의 차이다. 출향 계약 방식에 따라 장기적으로 기존 회사와의 고용계약을 해지하고 상대 회사로 전직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면서도 인재를 유지할 수 있어, 종업원은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항공사 관계자는 "지금 직원을 해고하면 훗날 항공 수요가 회복됐을 때 인력의 수와 질 모두 확보하기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일본 정부는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휴직시키는 기업에 급여 대부분을 보전하는 고용조정조성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을 휴직시켜도 인건비를 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직원들을 출향 보내는 데는 기존 업무와 비슷한 일을 계속하게 함으로써 기본 업무능력을 유지하게 하려는 노림수가 있다. 일본 정부가 고용조정조성금의 한도를 상향한 특례를 내년 2월까지 연장했지만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점도 이유다.
출향을 인재 확보의 기회로 삼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이온은 대형 이자카야 운영회사 침니로부터 임대받은 직원 45명 가운데 10명을 자사 직원으로 전직시켰다. 이자카야에서 쌓은 접객과 조리 경험이 슈퍼의 생선판매코너에서 유용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이온 관계자는 "코로나19는 다양한 기술을 가진 인재를 획득할 찬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출향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시기는 급격한 '엔고'로 불황을 맞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다. 당시는 조선과 철강회사에서 자동차 회사로 출향을 나가는 동종업계 출향이 대부분이었다. '코로나 출향'은 다른 업종으로 출향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상장 외식전문기업 100곳을 조사한 결과 11월까지 1200명이 다른 업종으로 출향을 나갔다. 항공, 관광업, 외식업 등 비제조업 부문은 실적이 추락한 반면 전자제품 판매점, 인력파견 회사 등은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어서다.
ANA와 JAL이 직원 1000여명을 다른 회사에 임대하기로 결정하자 대형 통신사와 전자제품 대리점, 슈퍼마켓 체인 같은 민간기업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까지 서로 데려가겠다며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고도의 접객 스킬을 가진 항공사 인재를 받아들이면 기존 종업원의 접객수준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종산업간 출향이 늘어나면서 정부 차원의 제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향을 중개하는 정부 산하 기관으로 산업고용안정센터가 있지만 대상기업이 제조업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4~10월 산업고용안정센터의 출향지원 실적은 350명에 그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