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피해자 진술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어"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강간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정모씨(23)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정씨에게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복지시설 취업 제한 각각 3년을 함께 명령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정씨는 2018년 12월25일 제주시 소재 한 모텔에서 7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여성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범행 전날인 24일밤 A씨 등 5명과 함께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졌고, 한시간 뒤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길 가다 시비가 붙었다. 갈 데가 없으니 모텔에서 잠을 자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정씨는 몸에 손을 대지 않는 조건으로 정씨의 부탁을 들어준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동의하에 자연스러운 접촉은 있었지만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은 신빙성이 낮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바닥이 차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는 조건으로 침대에서 자라고 말했다. 이후 정씨가 신체를 접촉한 뒤 성폭행 했고, 울면서 몸부림쳤지만 억압해 벗어날 수 없었다'는 피해자 진술 확인에 집중했다.
재판부는 "A씨의 진술 모습과 태도, 내용 등을 비춰봤을 때 피해자 진술은 당시 상황이 사진 또는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묘사했고 예상치 못한 범행에 당황하는 심리가 생동감 있게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A씨가 언급한 신체 일부에서 타액 반응이 양성으로 확인됐고, 정씨의 유전자가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건 직후 모텔 복도 CCTV에 찍힌 방에서 먼저 나오는 A씨를 보면, 달아나거나 겁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고 일상적인 모습이었다는 1심 판단에도 다른 해석을 내놨다.
2심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알릴 경우 감당해야 할 민망함과 난처함, 순간적인 판단 부족 등으로 이성적인 대처나 반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범행 내용과 죄질이 좋지 않고, 정씨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 피해자 역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무죄를 파기하고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1심에서 석방된 정씨는 항소심 선고로 법정 구속됐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