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지도부가 558조원 규모의 ‘슈퍼 예산안’ 처리에 합의한 것을 두고 당 내부에서 공개 비판이 나왔다. 예산 협상 과정에서 여당에 끌려가면서 결과적으로 나랏빚 늘리는 데 동의해준 꼴이 됐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5선인 서병수 의원은 2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비대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증액된 2조2000억원은 국채 발행으로 메우게 될 텐데 우리(국민의힘)가 국가채무 증가를 용인해준 꼴이 됐다”고 했다. 그는 당 지도부의 협상 태도를 지적하며 “‘어쩔 수 없다. 이 정도면 됐다’는 식의 모습이 국민에게 매너리즘에 빠진 정당으로 비칠까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4선인 홍문표 의원도 “현 정부가 세금 폭탄을 무책임하게 쏟아내고 있는데 국민의힘도 동조하는 정당 아닌가 하는 여론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오늘 아침부터 더불어민주당은 각 지역에 (홍보) 현수막을 쫙 붙이고 있는 것 같다”며 “집권당이 국민 복지를 다 한 것같이 전국적으로 홍보할 때 대책은 있느냐”고 되물었다.

협상 초반 국민의힘은 한국판 뉴딜 예산을 50% 넘게 깎겠다고 공언하는 등 정부 예산안에서 15조원 이상을 감액하겠다고 주장했었다. 협상 실무를 맡았던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최종 감액 규모(5조3000억원)에 대해 “(야당이 주장한) 재난지원금과 백신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국채 발행에 동의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확장재정을 강조해온 김 위원장 기조를 고려했을 때 예산 순증은 예고된 것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도 김 위원장은 “일반적으로 보면 야당에서 (증액에) 찬성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코로나 사태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며 “2조원 정도 증액된 게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고 했다.

정치권은 국민의힘이 지난해 ‘패스트트랙 충돌’ 관련 사법처리 여파로 물리적 행동이 어려운 데다 장외로 나가기도 마땅찮아 ‘얻을 것은 얻고 합의하자’는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과감한 예산 삭감에 나서는 게 선거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도 깔린 것으로 분석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