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어, 어서 피해"…화폭에 '진짜 날씨'를 그려넣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 존 컨스터블 '건초마차'
미술과 기상학을 융합한 최초의 그림
연출된 풍경화를 거부하다
미술과 기상학을 융합한 최초의 그림
연출된 풍경화를 거부하다
스웨덴 출신의 미국 작가 프란스 요한슨은 융합적 사고를 통해 창조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현상을 ‘메디치 효과’라고 명명했다.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 이름에서 따온 메디치 효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기술, 경험이 충돌하는 교차점에서 발생한다. 미술에서도 메디치 효과의 구체적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가장 위대한 영국 풍경화가 중 한 명인 존 컨스터블(1776~1837)의 걸작 ‘건초마차’가 꼽힌다. 미술과 기상학을 융합한 최초의 그림으로 미술과 과학 역사에 큰 공헌을 했다.
‘건초마차’의 배경은 컨스터블의 고향인 영국 서퍽주 플랫퍼드 밀의 스투어 강변 풍경이다. 여름날 건초를 실어 나르는 마차를 탄 농부와 아들이 무더위에 지친 말들을 쉬게 하려고 개울물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장면이다. 이 그림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하늘이다. 그림을 그리던 날의 대기현상, 하늘을 가로지르며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하얀 구름덩어리와 왼쪽의 어두운 구름, 다가오는 소나기의 징후까지 정확하게 화폭에 담아냈다.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그림 속 구름은 고적운과 층적운이 섞인 합성 구름이다. 화가인 컨스터블이 기상 조건과 날씨를 최초로 그림에 표현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컨스터블은 미술이 자연과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 예술가다. 이는 ‘회화는 과학이며 자연법칙에 대한 탐구로 추구돼야 한다’는 그의 강의록에서도 나타난다. 컨스터블은 화실에서 그린 고전적, 이상적, 영웅적 풍경화가 유행하던 시절 야외로 나가 영국의 지형과 날씨를 과학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유화스케치에 기록하고 정리했다. 작업실로 돌아와 스케치를 바탕으로 빛과 색의 관계 등을 연구하며 큰 규모의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풍경화의 혁신을 이끌었던 컨스터블을 매료시킨 것은 날씨, 그중에서도 구름이었다. 기상학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인데도 그는 기상현상을 이해하고 구름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19세기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의 논문 ‘구름 수정에 대한 에세이’와 토머스 포스터의 ‘대기현상에 대한 연구’를 탐독하며 전문지식을 쌓았다. 화가로는 최초로 과학적 관찰과 분석을 거쳐 구름을 연구한 기록물인 ‘구름 연구’ 연작을 남기는 업적도 세웠다. 더욱 놀랍게도 ‘구름 연구’ 스케치 뒷면에 구름을 관찰할 때의 날짜와 시간, 기상 조건, 자연광 효과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간 융합형 예술가를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컨스터블이 큰 기대를 품고 1821년 왕립아카데미전시회에 출품한 ‘건초마차’는 미완성이며 촌스럽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전개됐다. 한 화상이 ‘건초마차’를 구입해 1824년 프랑스 살롱전에 출품해 대성공을 거뒀다.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들라크루아, 제리코를 비롯한 많은 화가가 자연 풍경에 과학적 시각으로 접근한 ‘혁신적 풍경화’에 찬사를 보냈다. 관객의 갈채가 쏟아지면서 프랑스 왕이 수여하는 금메달도 받았다.
과학적·기록적이며 현장성이 특징인 ‘건초마차’는 야외에서 포착한 순간적 인상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했던 프랑스 인상주의가 태어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이유로 컨스터블은 ‘현대 프랑스 풍경화의 아버지’ ‘야외 회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술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것을 계기로 영국에서도 컨스터블의 예술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고 ‘건초마차’는 영국의 국보급 작품이 됐다. 영국 정부는 1943년부터 ‘건초마차’에 등장한 전통주택인 윌리 롯 하우스와 주변 풍경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국가신탁으로 관리하고 있다. ‘건초마차’의 배경인 자연 풍경을 체험하는 ‘컨스터블 컨트리’라는 당일여행 상품도 기획돼 인기리에 판매되는 등 컨스터블의 고향은 영국의 대표적 관광 명소가 됐다.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위대한 생각에 대해 ‘예술의 진실은 과학이 비인간적인 것을 막고, 과학의 진실은 예술이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을 막는다’고 노트에 적었다. ‘건초마차’는 융합적 사고가 위대한 생각을 낳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장 >
‘건초마차’의 배경은 컨스터블의 고향인 영국 서퍽주 플랫퍼드 밀의 스투어 강변 풍경이다. 여름날 건초를 실어 나르는 마차를 탄 농부와 아들이 무더위에 지친 말들을 쉬게 하려고 개울물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장면이다. 이 그림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하늘이다. 그림을 그리던 날의 대기현상, 하늘을 가로지르며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하얀 구름덩어리와 왼쪽의 어두운 구름, 다가오는 소나기의 징후까지 정확하게 화폭에 담아냈다.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그림 속 구름은 고적운과 층적운이 섞인 합성 구름이다. 화가인 컨스터블이 기상 조건과 날씨를 최초로 그림에 표현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컨스터블은 미술이 자연과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 예술가다. 이는 ‘회화는 과학이며 자연법칙에 대한 탐구로 추구돼야 한다’는 그의 강의록에서도 나타난다. 컨스터블은 화실에서 그린 고전적, 이상적, 영웅적 풍경화가 유행하던 시절 야외로 나가 영국의 지형과 날씨를 과학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유화스케치에 기록하고 정리했다. 작업실로 돌아와 스케치를 바탕으로 빛과 색의 관계 등을 연구하며 큰 규모의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풍경화의 혁신을 이끌었던 컨스터블을 매료시킨 것은 날씨, 그중에서도 구름이었다. 기상학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인데도 그는 기상현상을 이해하고 구름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19세기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의 논문 ‘구름 수정에 대한 에세이’와 토머스 포스터의 ‘대기현상에 대한 연구’를 탐독하며 전문지식을 쌓았다. 화가로는 최초로 과학적 관찰과 분석을 거쳐 구름을 연구한 기록물인 ‘구름 연구’ 연작을 남기는 업적도 세웠다. 더욱 놀랍게도 ‘구름 연구’ 스케치 뒷면에 구름을 관찰할 때의 날짜와 시간, 기상 조건, 자연광 효과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간 융합형 예술가를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컨스터블이 큰 기대를 품고 1821년 왕립아카데미전시회에 출품한 ‘건초마차’는 미완성이며 촌스럽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전개됐다. 한 화상이 ‘건초마차’를 구입해 1824년 프랑스 살롱전에 출품해 대성공을 거뒀다.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들라크루아, 제리코를 비롯한 많은 화가가 자연 풍경에 과학적 시각으로 접근한 ‘혁신적 풍경화’에 찬사를 보냈다. 관객의 갈채가 쏟아지면서 프랑스 왕이 수여하는 금메달도 받았다.
과학적·기록적이며 현장성이 특징인 ‘건초마차’는 야외에서 포착한 순간적 인상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했던 프랑스 인상주의가 태어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이유로 컨스터블은 ‘현대 프랑스 풍경화의 아버지’ ‘야외 회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술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것을 계기로 영국에서도 컨스터블의 예술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고 ‘건초마차’는 영국의 국보급 작품이 됐다. 영국 정부는 1943년부터 ‘건초마차’에 등장한 전통주택인 윌리 롯 하우스와 주변 풍경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국가신탁으로 관리하고 있다. ‘건초마차’의 배경인 자연 풍경을 체험하는 ‘컨스터블 컨트리’라는 당일여행 상품도 기획돼 인기리에 판매되는 등 컨스터블의 고향은 영국의 대표적 관광 명소가 됐다.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위대한 생각에 대해 ‘예술의 진실은 과학이 비인간적인 것을 막고, 과학의 진실은 예술이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을 막는다’고 노트에 적었다. ‘건초마차’는 융합적 사고가 위대한 생각을 낳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