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 창구.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 창구. /연합뉴스
전세매물 품귀 현상에 전셋값이 오르면서 올해 주요 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 규모가 11개월 새 무려 23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연간 전세대출 증가액이 20조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5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11월말 기준 103조원을 돌파했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11월말 기준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103조3392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12월말(80조4532억원)과 비교해 22조8860억원 늘어난 것이다. 5대 은행의 전세대출 누적 잔액은 작년 12월 80조원대로 올라선 뒤 올해 5월 90조원을 돌파하고 10월에는 100조원을 넘어서는 등 규모가 빠르게 불어났다.

월별 증가폭을 보면 지난 2월에 '역대 최대'인 3조3000억원을 기록한 뒤 3월(2조6000억원)과 4월(2조3000억원)에도 2조원대 증가를 이어갔다. 이후 5월과 6월에 잠시 1조원대로 내려갔다가 7월(2조2000억원), 8월(2조6000억원), 9월(2조8000억원), 10월(2조5000억원)까지 4개월 연속 2조원대 증가폭을 나타냈다. 월별 전세대출 증가폭이 넉 달 연속 2조원대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7~9월은 전세 시장에서 비수기다. 가파른 전세대출 증가세는 전셋값 급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상반기에는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와 전세 수요 증가가 겹치면서 전세자금 대출이 이례적으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부동산시장 과열을 잡기 위해 고가 주택을 사기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렵게 하자 주택 수요가 감소하고 대신 전세 수요가 늘어나 전세가격 증가세가 이어졌다. 또 정부가 작년 11월에 시가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의 전세자금 대출을 막는 전세대출 규제를 내놓으면서 2~3월에 전세대출을 받으려는 '막차' 수요가 집중됐다.

하반기 들어서는 정부의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등으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전셋값 상승세가 한층 더 가팔라졌다. 특히 전세물량 부족으로 전셋값이 급격히 뛴 영향으로 전세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다만 11월에는 넉 달 간 폭증하던 전세대출이 1조6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치며, 증가세가 전달보다는 주춤한 모습이었다. 이는 일부 은행이 일부 경우에 한해 전세자금대출을 연말까지 중단하는 등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은행권에서는 12월에도 전세대출 증가세가 크게 꺾이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셋값이 많이 올라있는 데다 전세 물량이 많이 없어진 상태에서 자녀 학군에 맞춰 이사하려고 미리 전세 계약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있었던 점이 11월에도 전세대출 증가가 이어졌던 주요 원인"이라며 "당분간 전셋값 급등 현상이 지속되며 전세대출 증가세가 일정 수준 이상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