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힘겨운 시기이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는 좋을 것이다. 기대한 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고 실망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영국 시인 J 러디어드 키플링은 ‘만약에…’라는 시에서 ‘승리와 좌절을 만나고도/ 이 두 가지를 똑같이 대할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라고 노래했다.
그동안 애쓴 수험생과 그 부모들을 위해 키플링의 시를 읽어드리고 싶다.
만약에…
-J 러디어드 키플링
모든 사람이 이성을 잃고 너를 비난해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를 의심할 때 자신을 믿고
그들의 의심마저 감싸 안을 수 있다면
기다리면서도 기다림에 지치지 않는다면
속임을 당하고도 거짓과 거래하지 않고
미움을 당하고도 미움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런데도 너무 선량한 체, 현명한 체하지 않는다면
꿈을 꾸면서도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생각하면서도 생각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면
승리와 좌절을 만나고도
이 두 가지를 똑같이 대할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악인들 입에 왜곡되어
어리석은 자들을 옭아매는 덫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있다면
네 일생을 바쳐 이룩한 것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낡은 연장을 들어 다시 세울 용기가 있다면
네가 이제껏 성취한 모든 걸 한 데 모아서
단 한 번의 승부에 걸 수 있다면
그것을 다 잃고 다시 시작하면서도
결코 후회의 빛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면
심장과 신경, 힘줄이 다 닳아버리고
남은 것이라곤 버텨라! 라는 의지뿐일 때도
여전히 버틸 수 있다면
군중과 함께 말하면서도 너의 미덕을 지키고
왕들과 함께 거닐면서도 오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들 중히 여기되 누구도 지나치지 않게 대한다면
누군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의 시간을
60초만큼의 장거리 달리기로 채울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아,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이 시는 키플링이 1910년 열두 살 된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썼다고 한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대학을 다닌 그는 시와 산문을 두루 잘 써서 큰 인기를 끌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헨리 제임스가 “키플링은 개인적으로 내가 알아온 사람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천재의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우리가 잘 아는 ‘정글북’도 그의 작품이다. 1907년 영어권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최연소 수상자로 남아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마흔 둘이었다.
그는 특히 영국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인도의 군대 생활을 그린 시 ‘병영의 노래’와 ‘7대양’ 등을 통해 영국의 제국주의를 미화했다는 비판도 함께 받았다. 조지 오웰로부터 ‘대영제국의 앞잡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영국에 맞서 불복종 운동을 편 간디가 키플링의 시 ‘만약에…’를 자주 애송했다는 점이다. 키플링보다 네 살 아래인 간디는 영국에서 공부한 변호사이기도 했다. 그가 ‘인도의 성자’로 추앙받게 된 이면에 제국주의 시인 키플링이 있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요즘도 이 시를 좋아하는 유명인이 많다. 고난 끝에 일약 스타가 된 영국의 오페라 가수 폴 포츠도 그중 한 명이다. 휴대폰 판매원이던 그는 초라한 외모와 가난, 교통사고, 종양수술 등의 어려움을 딛고 오디션 스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키플링의 이 시 덕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전설적인 액션 스타 이소룡 또한 이 시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의 딸은 “아버지가 너무나 좋아해 이 시를 금속 장식판에 새겨서 걸어두고는 늘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경기장인 윔블던코트의 선수 입장문 위 벽에도 이 시의 한 구절 ‘승리와 좌절을 만나고도/ 이 두 가지를 똑같이 대할 수 있다면(If you can meet with Triumph and Disaster And treat those two impostors just the same)’이 적혀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