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이오산업’ 행사에 참석해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온라인 기공식에서 발파버튼을 누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바이오 의약품 소부장 국산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박남춘 인천시장,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전 대표, 문 대통령,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허문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이오산업’ 행사에 참석해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온라인 기공식에서 발파버튼을 누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바이오 의약품 소부장 국산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박남춘 인천시장,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전 대표, 문 대통령,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허문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한창이었던 지난 3월 한국 진단키트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1위 진단기업인 로슈진단이 생산하는 리보핵산(RNA) 추출 시약 공급이 줄면서 진단키트를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는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시약 공급 가격도 50% 이상 치솟았다. 당시만해도 한국에서 유전자증폭(PCR) 진단키트의 핵산 추출 시약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초유의 위기를 겪은 뒤 분자진단 기업 솔젠트는 월 1억 개의 진단키트 생산이 가능한 추출 시약 생산과 연구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12월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팬데믹 위기 속 교훈얻은 K-바이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은 K-바이오 회사들이 그동안 약점으로 꼽혔던 핵심 소재·부품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실 한국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과 복제약(바이오시밀러) 생산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원료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삼정KPMG 컨설팅본부가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정책용역 의뢰를 받아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간 진행한 ‘코로나 시대 산업전략’ 연구에 따르면 바이오의약품 원부자재 국산화 비율은 약 17%에 그친다. 83%는 해외에서 공급받아 쓰는 셈이다.

바이오 업계는 지난 3월 진단키트 부족 사태와 같이 일단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되면 수요·공급 불균형으로 필수 소재를 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크게 느꼈다. 늦게나마 원료 국산화를 서두른 이유다.

솔젠트도 이런 회사 중 하나다. 이 회사가 대량 생산을 시작하는 원료는 PCR 진단키트에 들어가는 추출시약이다. 진단키트는 검사 방식에 따라 분자진단인 PCR, 면역진단인 항체·항원 진단 등으로 나뉜다.

PCR 방식은 진단키트 안에 담긴 핵산 추출 시약으로 DNA를 추출한 뒤 이를 증폭해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진단시약이 필요하다.
국내 업체들은 시약 대부분을 해외 기업인 로슈 등에서 수입해 사용한다. 국내 업체들도 생산을 하고 있지만 대량 생산할 순 없었다. 국산화율은 20% 이하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추출 시약을 구하지 못한 업체들이 원래 가격의 50% 이상 웃돈을 주고 추출 시약을 사기도 했다. 현재 솔젠트가 구축한 시약 생산설비는 월 1억 개 진단키트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이 회사는 독일 중국 등에서 주로 수입하던 진단키트용 튜브도 국산화했다. 노블바이오 등 국내 업체와 함께 기존 튜브를 코로나19 진단키트에 맞게 최적화했다.

솔젠트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각국 상황에 따라 필수 원료와 소재들의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며 “방역 주권 차원에서라도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솔젠트 직원이 코로나19 판별을 위해 쓰이는 진단시약을 진단키트에 담고 있다.  / 한경DB
솔젠트 직원이 코로나19 판별을 위해 쓰이는 진단시약을 진단키트에 담고 있다. / 한경DB
연 4000억 배지 시장도 국산화

진단키트 분야뿐 아니라 항체 바이오의약품의 핵심 원료도 국산화가 진행 중이다. 세포의 먹이인 배지와 정제용으로 사용하는 레진, 바이오 리액터(배양기) 세척제 등도 국산화가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국산화 속도가 가장 빠른 부문은 아미코젠이 개발 중인 배지다. 배지는 바이오의약품 원료 시장에서 시장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작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4000억원 어치가 팔렸다. 배지는 세포 배양 과정에서 쓰인다. 바이오의약품은 세포주 개발·생산→배양→정제→완제 등의 생산 과정을 거친다. 세포주에서 나온 세포들의 먹이가 배지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소재로 GE헬스케어 등으로부터 모두 수입한다. 유화증권에 따르면 이 시장은 2024년엔 두 배 이상인 8900억원 수준으로 늘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 2500억원 규모의 레진도 아미코젠이 국산화를 진행 중이다. 세포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세척하는 과정에서 사용된다. 레진은 일부 자체 개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한다.

바이옥스는 그동안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던 리액터 세정제를 국산화한 회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한미약품, 펩트론 등 국내 여러 기업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수입 세정제는 운송 기간이 길어 긴급한 상황에서는 제품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세정제는 세포를 리액터 안에서 배양한 뒤 이를 닦아낼 때 쓰인다. 세포의 먹이인 배지나 불순물 등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진단키트와 달리 바이오의약품 분야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수요 기업의 도움이 필요한데, 중소기업 간 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아미코젠은 배지와 레진 등을 셀트리온에 납품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셀트리온은 국산 소재·장비가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이를 적극 구매해주기로 약속한 바 있다.

셀트리온은 또 국내 중소기업 이셀사와 함께 바이오의약품 저장·운송용 일회용백 샘플 개발에 나섰다. 200L 규모 제품을 공동으로 테스트 중이다. 당초 국내 시장은 독일 싸토리우스와 미국 써모피셔가 독과점했으나 이셀사를 통해 처음으로 국산화에 나서게 됐다.

바이옥스의 세척제 국산화 도우미 역할을 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전과정을 도왔다. 특히 상생 차원에서 인천 송도 3공장을 본격 운영하기 전에 세정제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배지홍 바이옥스 대표는 “회사마다 어떤 세정제를 써야 하는지 등에 대한 자체 기준이 있다”며 “이를 바꾸려면 공정을 멈추고 우리 제품을 테스트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건비 손실 등을 감수하고 도움을 줬다”고 했다.

의료기기 시장에서도 국산화가 진행 중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전량 수입하던 혈액투석기 멤브레인 필터를 국산화하고 있는 시노펙스가 대표적이다. 멤브레인 필터는 특정 성분을 선택적으로 걸러내는 여과 기능과 액체에 녹아 있는 물질이나 혼합기체 분리까지 가능한 여과재다. 혈액투석기에는 겉에 미세한 구멍이 뚫린 중공사막멤브레인이 들어가는데 시노펙스는 이와 관련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필터와 선(라인)으로 구성된 혈액투석기 시장 규모는 건강보험공단의 수가 지급 기준으로 작년 8398억원이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