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벤처붐’ 조성으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최고재무책임자(CFO, Chief Financial Officer) 역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소수 인력으로 시작했던 신생 기업들이 이제는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다. 기업의 투자 유치, 기업공개(IPO) 추진 등 ‘안방살림’을 총괄하는 CFO 손에 스타트업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스타트업 중 CFO가 있는 하우스는 거의 없었다. 창업자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3~4명이 의기투합해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재무책임자까지 뽑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매출이나 실적이 없는 신생 기업인 탓에 유능한 CFO를 뽑기도 어려울 뿐더러 채용하더라도 할 일이 많지 않다.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회사 운영을 총괄하면서 자금 관리 업무까지 맡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 규모가 작을 때는 괜찮지만 성장 단계에 진입하면서 자금 관리에 허점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재무 건전성 관리에 실패하거나 외부 기관투자자 자금을 무분별하게 받아 창업자 지분 관리가 안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상장 준비에 임박해서 뒤늦게 CFO를 채용해 준비 부족으로 상장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상당수다.

그렇다보니 최근에는 창업자가 직접 재무 관리 역량을 갖추거나 사업 초기부터 재무담당자를 뽑아 자금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유망 스타트업이 많아지면서 스타트업의 자금 관리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파인드어스’가 대표적이다.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요즘은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고, 성장 단계에 진입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시리즈 B~C 단계에 진입하면 별도 CFO를 선임할 것을 제안하거나 소개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이 상장한 다음에는 CFO가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장기적으로 회사와 호흡할 수 있는 CFO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국내외 재무 전문가들도 많아지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 쿠팡이 향후 나스닥 상장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부터 나이키와 월마트를 거친 재무 전문가 마이클 파커를 최고회계책임자(CAO)로, 한국·미국·유럽에서 25년간 활동한 알베르토 포나로를 CFO로 영입한게 대표적이다.
지용준 스켈터랩스 CFO(왼쪽)과 이상진 뷰노 CFO(오른쪽).
지용준 스켈터랩스 CFO(왼쪽)과 이상진 뷰노 CFO(오른쪽).
국내에서는 글로벌 투자은행(IB), 증권사 출신들이 많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스켈터랩스는 올해 글로벌 IB 노무라투자증권 출신 지용준 상무를 CFO로 영입했다. 지 상무는 노무라 투자증권에서 10여년간 국내 대기업등을 상대로 M&A 자문 업무를 담당하다가 스켈터랩스로 이직해 기관투자자 투자금 유치부터 IPO 준비까지 책임지고 있다.

금융 AI 스타트업 크래프트 테크놀로지스도 삼성증권에서 자문 업무를 담당하는 김하늬 이사를 CFO로 채용했다. 유전체 분석 스타트업 지니너스는 올해 구완성 연구원을 CFO로 뽑았다. 그는 동아에스티 제품개발연구소와 동아쏘시오홀딩스 등을 거쳐 하이투자증권, NH투자증권에서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의료기기 스타트업 뷰노에는 이상진 상무가 있다. 2018년에 뷰노에 합류한 이 상무는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등을 거쳤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