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공쿠르상 심사와 결과 발표가 이뤄지는 파리 시내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 드루앙.
매년 공쿠르상 심사와 결과 발표가 이뤄지는 파리 시내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 드루앙.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자가 발표된 지난달 30일, 파리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 드루앙에 심사위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아카데미 공쿠르의 종신회원 10명으로 매년 이곳에서 심사 결과를 알리고 점심을 함께한다. 올해 일정은 코로나19 사태로 봉쇄된 서점들이 다시 문을 열 때까지 한 달 가까이 늦췄다.

이날 발표된 수상자는 수학자인 프랑스 소설가 에르베 르 텔리에(63)다. 과학기자 출신인 그는 과학적 원리를 자주 활용하는 작가다. 일간 르몽드 홈페이지에 사회 풍자 글을 매일 연재하는 등 전통적인 작가들과 다른 활동을 해왔다. 문학과 수학을 접목하는 실험적 성격의 문화단체도 이끌고 있다.

수상작 《아노말리(L’anomalie·변칙)》는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탑승객들의 이중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암살자와 나이지리아 팝스타, 작가가 비행기로 뉴욕에 도착한 뒤 3개월 전 자신들의 다른 버전이 이미 도착한 것을 알게 되는 기묘한 상황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보다 10여 일 앞서 발표된 영국의 부커상은 패션디자이너 출신 미국 신인 작가인 더글러스 스튜어트(44)가 받았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그는 24세 때 뉴욕으로 이주해 캘빈클라인과 랄프로렌, 바나나리퍼블릭 등의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동안 기성 문단에는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고두현의 문화살롱] 세계 3대 문학상, 신인·수학자·무명시인 '이변'
수상작 《셔기 베인(Shuggie Bain)》은 그의 첫 소설이다. 가난한 성장기 경험을 찰스 디킨스처럼 생생한 문장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설 출간까지 32차례나 퇴짜를 맞았던 그는 시상식에서 “출판사들이 작품은 높게 평가했지만 독자가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말했다.

10월 8일 발표된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미국의 ‘무명(無名) 시인’ 루이즈 글릭(77)이었다. 그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시 선집에 한두 편 소개된 게 전부였다. 미국에서도 주류는 아니었다. 고교 때 거식증에 걸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몇몇 대학의 창작 수업을 청강하며 혼자 시를 공부했다.

그는 63세 때 펴낸 대표 시집 《아베르노(Averno)》로 “그리스 신화를 환상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눈풀꽃(snowdrops)’에서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나는 지금 두려운가./그렇다, 하지만/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라며 봄의 소생을 노래했다.

눈 속에서 피는 눈풀꽃은 그의 지난 인생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노벨문학상이 개별 작품 대신 전 생애의 성과를 평가해서 주는 것이기에 의미가 더 크다.

올해 세계 3대 문학상(노벨상·공쿠르상·부커상) 수상자들은 이처럼 독특한 이력과 새로운 감성을 지녔다. 기존의 주류 문학인과 다르다. 이들이 미증유의 변종 감염병으로 휘청거리는 세상에 문학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오는 10일 열릴 예정이었던 노벨상 시상식은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다.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 때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글릭은 “코로나 기간에 오히려 새로운 시를 쓸 수 있었다”며 “희망이 있는 곳에 예술이 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작가’ 스튜어트도 “내게 소설은 뉴욕의 디자이너라는 반 페이지와 글래스고의 소년이라는 반 페이지를 합쳐 한 페이지로 만드는 것이었다”며 새로운 꿈을 내비쳤다. 이들의 말처럼 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쏘아 올리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곧 문학이다.

공쿠르 상금은 '밥 한끼', 노벨상은 13억원
부커상 7400만원…책 '불티'

올해 노벨문학상 상금은 스웨덴 화폐로 1000만크로나(약 13억원)다. 다이너마이트 발명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산으로 1901년부터 시상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때인 2012년 이후 800만~900만크로나로 줄었다가 올해 회복했다.

프랑스의 공쿠르상 상금은 단돈 10유로(약 1만4000원)다. 1903년 제정 당시 ‘밥 한끼 값’이었던 50프랑을 2002년 유로화로 바꾸면서 환산한 금액이다. 작가 에드몽 드 공쿠르, 쥘 드 공쿠르 형제가 남긴 재산으로 운영한다.

상금은 비록 상징적인 액수에 불과하지만 수상작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돼 작가에게 명예와 부를 안겨준다. 프랑스에서만 연간 60만 부 이상 팔리고,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된다.

영국의 맨부커상 상금은 5만파운드(약 7400만원)다. 1969년에 제정됐으니 역사는 짧지만 위상은 높다.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 운영하는 게 차이점이다. 영국 유통회사 부커가 주관하는 부커상으로 출발했다. 2002년 금융기업 맨그룹의 후원 이후 맨부커상으로 바뀌었다가 맨그룹의 후원 중단에 따라 지난해부터 부커상으로 이름을 다시 찾았다.

2005년부터는 영연방 지역 외 작품 중 영국에서 번역돼 나온 책을 대상으로 국제부문상을 신설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아시아권 최초로 이 상을 받았다. 상금은 ‘본상’과 같은 5만파운드지만 번역의 중요성을 고려해 작가와 번역가가 절반씩 나눠 갖는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