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2년 내에 대침체 온다"…미래학자의 경고 [노경목의 미래노트]
최근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상장기업들은 무더기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경기도 외곽이나 지방 도시에서도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들이 속속 나타난다.

하지만 내년 경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어둡다. 지난 3일 열린 한경밀레니얼포럼 송년회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금융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들의 수장은 "경제회복이 기대보다 더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산시장과 전문가들의 전망 사이의 격차가 이만큼 벌어졌던 때가 있었나 싶다. 이처럼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에서 미래학을 공부한 최윤식씨는 한국 및 세계 경제의 여러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살폈다. 이 내용은 그가 올해 7월 출간한 '빅체인지, 코로나19 이후 미래 시나리오'에 정리돼 있다.

최씨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요약해 봤다.

"경제위기는 예정된 미래"

"한국, 1~2년 내에 대침체 온다"…미래학자의 경고 [노경목의 미래노트]
▷저서에서 경제위기가 내년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두산그룹과 금호그룹 등 30대 그룹 내에서도 이미 구조조정과 자금 지원을 받는 곳이 생기고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급한 불을 끈 이후에 한계기업과 스타트업, 자영업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다."

▷최근 주식시장의 활황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에도 상대적으로 견조한 기업 실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분석이다.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이미 7~8년 전부터 정체기를 겪고 있다. 기업 부실화를 평가하는 앨릭스파트너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내 좀비기업의 비율은 2014년 4분기 11%에서 2016년 2분기 15%로 상승했다. 같은 시점에 미국은 5%, 일본은 2%, 유럽 및 아프리카는 7%였다.

OECD의 경기선행지수 역시 한국은 코로나19 발발 직전이 금융위기 당시의 유럽과 비슷할 정도로 악화됐다. 2017년 6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2018년 초에는 OECD 평균보다 낮아졌고 그해 7월부터는 본격 수축기에 돌입했다. 하락 기간도 역대 최장기다.

기업신뢰지수는 더 일찍 떨어져 2010년부터 하락이 시작됐다. 2014년에는 OECD 35개국 중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한국 제조업의 구매자 관리지수 역시 2014년부터 하락을 시작해 코로나19 발발 전까지 계속 하락했다."

▷최근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있고 전기차 배터리 등 다른 품목들의 수출도 견조하지 않나.

"반도체 호황이 착시를 일으켰던 2017~2018년을 제외하면 한국 수출은 거의 늘지 않았다. 2019년 9월 수치가 2010년 말과 비슷하다. 2019년 최저치는 2008년 7월 최고치와 차이가 없다.

한국 국내총생산(GDP)가 2010년 1조940억달러에서 2018년 1조7200억달러까지 늘어나는 사이에 실질 수출규모는 하락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 수출은 10년 전으로 후퇴했다고 평가한다.

코로나19 이후에 경기가 반등하더라도 많은 나라들은 자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 보호 무역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도 거세지는 가운데 한국 수출은 최소 3~4년간 이전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이는 이미 빠른 성장률 하락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 경제성장률이 5%에서 2%까지 떨어지는데 걸린 시간이 34년이었다. 독일은 27년, 일본은 25년이 걸렸다.

하지만 한국은 단 7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1%대로 추락하는데 걸린 시간은 일본이 4년, 한국이 1년이다. 미국과 독일은 코로나19 전까지 2%대 성장률을 유지했다."

▷코로나19 이전에 구조적인 문제로 한국 경제가 침체될 것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코로나19를 어떤 식으로 수습하든 한국에는 이같은 문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코로나19에 따른 충격과 피해의 크기에 따라 위기의 강도와 길이가 결정될 뿐이다.

현실화되고 있는 코로나19 2차 대유행기로 추가 충격을 받으면 한국 경제는 무서울 정도로 악화될 수 있다. 내년에 코로나19가 물러가더라도 한국 제조업은 반등하기 힘들다. 결국 구조조정은 정해진 미래다.

기업 부채가 상당한 가운데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길어지거나 한국에 금융위기가 오면 금리 상승이 불가피하다. 이 시점이 되면 많은 기업이 파산하게 된다."

"신흥국發 위기 가능성 주시해야"

▷기업들이 도산하고 금리가 오르는 상황이 오면 가계 경제 역시 큰 타격을 받을텐데.

"부동산과 맞물려 있는 막대한 가계부채부터 충격이 닥칠 것이다. 이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구조조정보다 규모가 크고 위험하다.

물론 정부 주도 하에 질서 있는 가계부채 감소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이 이뤄진다면 금융 시스템 붕괴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장기 저성장은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버블을 터뜨리기를 두려워하는 정부가 가계 부채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하는 경우다. 위기 현실화를 다음 정부로 미루는 폭탄 돌리기를 선택한다면 붕괴 시점은 연장할 수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외부 충격에 의해 강제적인 디레버리징이 나타나면 금융 시스템까지 붕괴하게 된다. 제 2의 금융위기가 한국경제를 강타하는 것이다."

▷조건이 갖춰졌다고 꼭 위기가 온다는 법은 없다. 위기에 불을 붙일 방아쇠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미래 징후(future signal)는 신흥국 금융·외환위기의 시점과 규모다.

올해 4월 국제금융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0년 1년간 중국을 제외한 58개 신흥국에서 2160억달러의 자금이 유출될 전망이다. 3월에만 830억달러가 신흥국을 탈출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4배다.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면서 신흥국이 갚아야할 달러 표시 부채 부담은 늘어났다. 코로나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따른 효과에서도 이들 국가들은 한동안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미국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이나 달러 가치 하락에 부담을 느껴 긴축을 시작하면 상당수 국가가 금융위기 및 외환위기에 처한다."

▷전반적인 전망을 듣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주식과 부동산을 모두 처분해 현금화해야할 것 같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의 주식시장은 단순한 거품이나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투자 흐름의 대전환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광범위한 주식 투자가 일시적이 아닌 중장기적 흐름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가격이 이미 천정 수준까지 올라 일반 중산층이 추격 매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코로나19에 경기 침체가 겹치면 2~4년간 중산층의 경제력은 하락한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주식시장의 투자 매력도는 앞으로 3~4년, 최대 10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예상된 위기는 현실화되지 않는다지만

최씨가 언급한 좀비기업 증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은 한경 밀레니얼포럼 송년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이야기한 한국경제의 위기요인이기도 하다. 최씨의 책과 3일 나온 밀레니얼포럼 관련 기사를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예상된 위기는 현실화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위기로 이끌 수 있는 요인을 예상한 경제 주체들이 미리 대응에 나서면서 실제 위기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경제에 대한 전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 비관적인 전망의 근거를 철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최씨가 위기의 근거로 지적한 기업 및 경기 선행지수 장기 하락은 한국 경제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에 따른 것이다. 예상한다고 막을 수 있는 성질의 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특정 요인을 지나치게 부각해 위기 가능성이 과장됐을 수는 있다. 이 부분 역시 최씨의 책을 통해 각자가 판단할 부분일 것 같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