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대형 시중은행 한 곳이 콜센터 영업시간을 축소하겠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평일 오전 8시에서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던 것을 오후 8시까지 2시간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모바일 뱅킹이 보편화하면서 폰뱅킹 수요가 줄어드는 것을 감안한 조치였다.

게시글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콜센터 운영 시간 단축도 없던 일이 됐다. 가장 큰 이유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내세운 조직 내부의 반발 때문이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야간에 콜센터를 이용하는 고객이 아직도 있기 때문에 영업시간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나왔다”며 “모바일 뱅킹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반영했다”고 말했다. 콜센터 이용량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그래프는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다.

금융권에서는 변화가 생기면 ‘밥그릇’이 줄어들 수 있다는 임직원들의 우려가 얼마나 큰지 확인한 사례라며 이번 일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다. 은행들이 조직을 개편하거나 영업 방식을 바꾸려고 할 때마다 발생한 해프닝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오랫동안 보수적으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지배적”이라며 “한두 가지만 바꾸려 해도 여기저기서 반발이 일어나기 때문에 큰 혁신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내부 반발뿐만 아니다. 금융당국의 개입도 은행들의 변화를 가로막는다. 구조조정을 하거나 인력 운용 방식을 바꿨다가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른다. 최근 한 대형 은행은 점포 개혁 혁신안을 내놨다. 오프라인 영업점 방문이 줄어드는 것을 감안해 거점 점포를 중심으로 지역마다 점포를 묶어 관리하는 게 뼈대였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점포를 마음대로 줄일 거냐’며 잇따라 눈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이 올해 점포 축소를 자제할 것을 주문했기 때문에 은행들이 경영전략을 제대로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행 경영진은 변화에 뒤처지면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빅테크(대형 IT기업) 대표 주자들은 앞다퉈 모바일 금융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들도 ‘무(無)점포 영업’을 무기로 대출 점유율을 높이는 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금융의 비대면·디지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안팎으로 눈치만 보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채 장거리 경주에서 이길 수 있을까. ‘대마불사’란 말도 그만 잊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