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正史) 격인 진수(陳壽·233~297)의 '삼국지(三國志)'와 나관중(羅貫中·생몰년 미상)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등에서는 유비·관우·장비 중 촉한(蜀漢)의 왕이 되는 유비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현존하는 소설 '삼국지'의 최초 텍스트로 알려진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지은이 미상)에서는 장비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삼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임금이 된 사람도 유비가 아니라 장비라고 서술한다.

'동주 열국지'(2015)와 '원본 초한지'(2919)를 번역 출간한 인문학자 김영문이 최근 번역한 책 '삼국지평화'(교유서가)에는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장비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책은 서주(徐州)를 잃고 삼형제가 뿔뿔이 흩어질 때 장비가 고성(古城)에 들어가 근거지를 마련하는데, 황종궁이라는 궁궐을 짓고 자신을 무성대왕(無姓大王)이라 일컬으며 쾌활(快活)이라는 연호를 썼다고 설명한다.

또 유비보다 먼저 왕이 된 장비가 고성으로 찾아온 유비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며 어서 보위에 오르라고 간곡히 요청했다고 묘사한다.

유비보다 먼저 왕이 됐다…장비 활약상 두드러진 '삼국지평화'
책에 따르면 유비·관우·장비가 도원(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은 '도원결의'를 장비가 주도하고, 독우 최렴(崔廉)을 죽이고 삼형제가 관군에 쫓겨 태항산으로 들어가 산적이 될 때도 장비가 앞장선다.

장비는 호뢰관에서 여포와 싸울 때 혼자서 여포를 물리치고, 소패성에서는 여포의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뚫고 조조에게 세 번 원군을 청하러 가기도 한다.

저자는 삼국지평화에 장비가 돋보이게 서술된 것과 관련해 '평화'(平話)의 장르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평화는 창(唱) 없는 이야기 공연 대본을 뜻하는데, 묘사가 다소 거친 감이 있고 스토리 전개도 빠른 게 특징이다.

이야기를 청중에게 들려주는 공연장에서는 요약된 줄거리에 살을 붙이고 피를 섞어 더욱 강화된 구성과 생생한 현장음으로 대본 텍스트보다 훨씬 긴 내용을 보여줘야 했기에 소설보다 짜임새는 덜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유비보다 먼저 왕이 됐다…장비 활약상 두드러진 '삼국지평화'
책은 후한 말기의 혼란과 십상시의 전횡을 묘사하며 바로 소설로 진입하는 '삼국지연의'와 달리 조조·유비·손권의 환생 이야기도 담고 있다.

한 고조 유방의 건국 과정에 큰 공을 세우고도 토사구팽을 당한 한신·팽월·영포가 저승의 판결을 통해 각각 이승의 조조·유비·손권으로 환생해서 한 헌제로 환생한 고조 유방에게 복수한다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한신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하고 유방에게서 독립하라고 말하는 괴철은 제갈량으로 환생해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하고 군사로 활약한다.

저승의 판결을 내린 사마중상은 사마의로 환생해 진나라 건국의 기초를 놓는다.

소설 삼국지의 중요 대목 중 하나인 적벽대전 내용도 차이가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작전을 주도하고 오나라의 주유와 군사들이 제갈량의 병법을 따른다.

하지만 삼국지평화에서는 주유와 황개 등 오나라 장수들이 전투를 주도하고 제갈량은 동남풍만 불게 하는 보조 역할로 나와 삼국지연의와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유비보다 먼저 왕이 됐다…장비 활약상 두드러진 '삼국지평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