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與의 막장 정치…'입법 독주' 제동장치마저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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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이 정한 절차 '패싱'…축조심사 건너뛰고 공청회는 요식
(2) 안건조정위 유명무실…야당 몫 위원에 범여권 의원 배정
(3) '24시간용'된 필리버스터…공수처법 등 매일 한 건씩 처리
(4) 소위원회 전원일치 관행 파기…靑 입김에 국회 불문율도 깨져
(2) 안건조정위 유명무실…야당 몫 위원에 범여권 의원 배정
(3) '24시간용'된 필리버스터…공수처법 등 매일 한 건씩 처리
(4) 소위원회 전원일치 관행 파기…靑 입김에 국회 불문율도 깨져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재벌 개혁’을 위해 공정거래법 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뒤 일관되게 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전속고발권은 가격 담합 등 공정거래 분야 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해야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정부·여당의 입장은 지난 8일 하루에만 유지, 폐지, 유지 등 세 차례 번복됐다. 9일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 속에 정상적인 의회 민주주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주요 쟁점 사항만 열 개가 넘는 방대한 내용이 담겼다. 이런 전부개정안 또는 제정법안이 상임위에 상정되면 △대체토론 △공청회 △소위원회 심사 △축조심사 △찬반 토론 등 국회법에 규정된 단계를 밟아야 한다. 대개 위원회 의결로 생략할 수 있는 절차와 달리 법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며 의결하는 축조심사는 생략할 수 없다고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이런 절차들을 아예 생략하거나 요식행위로 다뤘다. 법안심사 소위원회는 단 한 차례만 열렸다.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회 간사인 성일종 의원은 “방대한 법조문을 한번 눈으로 대강 보고 회의를 끝냈다”고 맹비난했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도 이틀 전인 지난 7일에야 공청회가 열렸다. 야당 의원들이 빠진 가운데 전문가 두 명이 약 30분간 법안 내용을 설명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미래 입법 과제로 내세운 15개 주요 쟁점 법안 중 13개가 이런 방식으로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의 경우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제정법이다. 이들 법안이 모두 3~4일 사이 상임위 소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 체계·자구심사를 위해 5일간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국회법(59조) 절차도 생략됐다.
지난 7월 말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 3법’은 민주당이 이 같은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강행 처리한 대표 법안이다. 법안심사 소위를 아예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후 국회를 통과해 전셋값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민주당이 공정거래법 개정 과정에 전속고발권에 대한 방침을 수차례 번복한 것도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야당 측 안건조정위원인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며 버티자 민주당은 안건조정위에서 전속고발권 폐지 조항을 담은 법안을 의결했다. 이후 곧바로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어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바꿨다.
좌동욱/김소현 기자 leftking@hankyung.com
(1) 법 절차 패싱
174석 거대 여당이 주요 입법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여야 간 입장 차가 큰 쟁점 법안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법을 만드는 국회가 국회법에 명시된 절차와 규정도 지키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주요 쟁점 사항만 열 개가 넘는 방대한 내용이 담겼다. 이런 전부개정안 또는 제정법안이 상임위에 상정되면 △대체토론 △공청회 △소위원회 심사 △축조심사 △찬반 토론 등 국회법에 규정된 단계를 밟아야 한다. 대개 위원회 의결로 생략할 수 있는 절차와 달리 법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며 의결하는 축조심사는 생략할 수 없다고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이런 절차들을 아예 생략하거나 요식행위로 다뤘다. 법안심사 소위원회는 단 한 차례만 열렸다.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회 간사인 성일종 의원은 “방대한 법조문을 한번 눈으로 대강 보고 회의를 끝냈다”고 맹비난했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도 이틀 전인 지난 7일에야 공청회가 열렸다. 야당 의원들이 빠진 가운데 전문가 두 명이 약 30분간 법안 내용을 설명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미래 입법 과제로 내세운 15개 주요 쟁점 법안 중 13개가 이런 방식으로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의 경우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제정법이다. 이들 법안이 모두 3~4일 사이 상임위 소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 체계·자구심사를 위해 5일간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국회법(59조) 절차도 생략됐다.
지난 7월 말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 3법’은 민주당이 이 같은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강행 처리한 대표 법안이다. 법안심사 소위를 아예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임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후 국회를 통과해 전셋값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2) 무력화된 안건조정위
소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절차들도 외면당하고 있다. 2012년 여야 합의로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의 안건조정위원회가 이런 경우다. 정치적 견해차가 큰 법안에 대해 여야 동수(각 3명)로 위원회를 꾸려 최대 90일간 밀도 있게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거대 여당 앞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민주당 출신 상임위원장이 야당 몫 위원에 범(汎)여권 의원을 배정했기 때문이다. 위원회 구성이 3 대 3에서 4 대 2로 바뀌자 오히려 안건을 신속하게 통과시키는 제도로 바뀌었다.민주당이 공정거래법 개정 과정에 전속고발권에 대한 방침을 수차례 번복한 것도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야당 측 안건조정위원인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며 버티자 민주당은 안건조정위에서 전속고발권 폐지 조항을 담은 법안을 의결했다. 이후 곧바로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어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바꿨다.
(3) 필리버스터도 속수무책
필리버스터는 다수파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으로 의사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는 제도다. 소수 야당과 합의 없이 한꺼번에 많은 법안을 통과시키지 말라는 취지가 담겼다. 이런 필리버스터도 거대 여당 앞에선 쓸모가 없었다. 국회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요구하면 24시간 후 필리버스터를 종료할 수 있는 법 조항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공수처법,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남북관계발전법 등 3개 법안에 대해서만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추가로 하더라도 실효가 없다는 판단에서다.(4) 소위 만장일치 관행 파기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협력과 견제를 근간으로 하는 ‘대의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법안심사 소위의 ‘전원일치’ 합의제가 지켜지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법에 정해진 원칙은 아니지만 여야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독주를 막기 위해 오랜 기간 지켜온 불문율로 평가받았다. 야당은 청와대가 이런 원칙을 주도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본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경제계 반대가 심한 법안의 강행 처리에 부담을 느껴온 민주당 지도부가 마지막에 돌아선 것도 청와대 입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좌동욱/김소현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