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보다 5㎝ 낮은 조수 수위 예보에 작동 안시켜
이탈리아 수상도시 베네치아가 8일(현지시간) 높은 조수로 또다시 물바다가 됐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후 베네치아에 최대 138㎝의 조수가 밀어닥쳐 도시 곳곳이 침수됐다.

베네치아의 랜드마크인 산마르코광장도 성인의 무릎까지 바닷물이 들어차며 출입이 통제됐다.

이탈리아 정부가 60억 유로(현재 환율로 약 7조8천940억 원)를 들여 만든 홍수예방시스템(MOSE·모세)이 이번에는 적시에 가동되지 않았다.

시스템 통제센터는 규정상 조수 높이가 130㎝ 이상으로 예보될 때 베네치아 석호 입구에 설치된 모세를 가동한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조수가 120∼125㎝에 그칠 것으로 예보되면서 경계를 풀고 있다가 오후 들어 아드리아해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 '보라'(Bora) 등의 영향으로 갑자기 조수가 높아지며 눈뜨고 피해를 보는 상황이 됐다.
현지에서는 당국이 시시각각 돌변하는 기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규정과 매뉴얼에 얽매여 방비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불과 5㎝ 차이 때문에 이처럼 큰 피해를 초래한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이참에 모세 작동 버튼을 누르기 위한 조수 수위 기준을 120㎝까지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루이지 브루냐로 베네치아 시장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스템 통제센터 규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 통제센터는 9일 오전 조수 수위가 다시 123㎝에 이를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자 새벽 3시 모세를 작동시켰다.

규정보다 낮은 예보치였지만 예방 차원에서 시스템을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침수 사태가 반면교사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도시 곳곳이 물에 잠긴 터라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많다.

이번 침수 피해액은 대략 1천500만유로(약 197억원)에 달할 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모세는 78개 인공 차단벽으로 구성돼 있다.

평상시에는 바닷속에 잠겨있다가 비상시 수면 위로 솟아올라 조수를 막는 방식이다.

최대 3m 높이의 조수까지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17년간의 긴 공사 끝에 올 상반기 완공돼 지난 10월부터 실가동됐다.

베네치아는 매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 사이 조수가 상승하는 '아쿠아 알타'(Aqua Alta)로 상습적인 물난리를 겪는다.

최대 120㎝까지의 조수에는 대응할 여력이 있지만 이를 넘어가면 피해가 불가피하다.

작년 11월에도 조수가 187㎝까지 불어나며 비잔틴 양식의 대표 건축물인 산마르코대성당을 포함해 도시의 80% 이상이 침수되는 피해를 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