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와 별도로 감사 선출하면서 '개별 3%룰' 적용해야
경영권 위협 우려는 과하다는 지적도


재계의 반발에도 '공정경제 3법' 중 상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특히 외국계 투기 펀드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할 수 있어 우려가 큰 상태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상장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하고 이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일명 '3%룰'이다.

그동안은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일괄 선임한 뒤 이 중 감사위원을 선출해 왔기 때문에 이미 감사가 최대주주의 영향력 하에 있어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최대주주의 의결권까지 제한하도록 해 당장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새 감사위원을 선임해야 하는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다만 개정안은 감사위원이 사내이사인지 사외이사인지에 상관없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더해 3%까지만 의결권을 인정하기로 했던 정부안에서 한발 물러나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출에 한해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들에게 각각 3%를 인정하는 것으로 수정돼 통과됐다.

상법 개정안에 반발했던 기업 입장에서는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불만은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시총 상위 10대 기업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평균 30.41%로, 이중 '개별 3%룰'을 적용하면 의결권 행사 가능한 지분율의 평균은 5.52%에 불과하다.

반면 외국인 지분율 평균은 38.12%에 달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1.21%지만, 개별 3%룰을 적용하면 의결권은 12.52%로 뚝 떨어진다.

SK하이닉스와 네이버 역시 21.36%와 13.05%인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로 주저앉는다.

'엘리엇 사태'를 겪은 현대차도 걱정이 크다.

작년 현대차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수소부 경쟁사인 발라드파워시스템사 회장 등 3명을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추천했으나 사외이사 선임 단계에서 이들 모두 부결됐다.

다만 당시 이들 3명에 대해 외국인 지분 중 45.8%, 49.2%, 53.1%가 각각 찬성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별 3%룰이 적용되면 현대차 최대주주·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행사 가능 지분율은 30.81%에서 8.49%로 제한되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경우 적어도 1명의 이사(감사위원)는 이사회에 진출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경총은 "외국인 지분 보유 비율이 높은 대기업의 경우 이사회 진입 비용이 대폭 낮아져 해외 펀드나 경쟁 세력 등의 이사회 진입 시도가 증가하고 최대주주의 선임권은 무력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개별 3%룰'이 외국계 펀드나 경쟁 세력이 지분을 3% 이하로 쪼개 접근하도록 만드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3년 뉴질랜드계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이 SK㈜ 지분을 14.9% 매집해 최대주주에 오른 뒤 보유 지분을 자회사 5개에 약 3%씩 분산시켜 이사회 진입을 시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소버린은 이듬해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 후보 5명을 추천했지만 이사 선임 단계에서 SK그룹 우호지분에 밀려 부결된 바 있다.

당시 이사 선임 절차를 안 거치고 개정안처럼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했다면 소버린이 추천한 인사가 감사위원에 선임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미국의 억만장자 칼 아이칸이 KT&G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 사례도 있다.

2005년 KT&G의 지분을 6.6% 확보하며 2대 주주로 등극한 칼아이칸 연합은 보유 지분을 3개 펀드에 분산하고, 다음 해 주주제안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요구, 사외이사 1명 선임에 성공했다.

현행법상 5% 미만의 지분은 보유시 공시 의무가 없어 만약 외국계 펀드가 지분을 3% 이하로 분할 보유할 경우 회사에서 이를 사전에 인지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경총은 "외국계 펀드나 경쟁 세력이 지분 쪼개기 등으로 20% 이상 의결권을 확보 가능한 상황에서는 기업의 방어권은 사실상 무력화되는 수준"이라며 "당장 내년 초부터 신규 감사위원 선임을 앞둔 기업들은 당혹감과 함께 어떻게 대응할지조차 모를 정도로 대혼란에 빠져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감사위원 선임 만으로 경영권 위협을 우려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 겸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법이 논의 과정에서 너무 약화해 상당히 실망했다"며 "상법 3%룰 완화로 대주주를 견제하는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