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골리앗기업이 다윗에 지는 이유
지난 10월 뉴욕증시에서 또 하나의 이변이 있었다. 태양광과 풍력을 주로 생산하는 에너지업체인 넥스테라에너지가 세계 최대의 석유 메이저 엑슨모빌의 시가 총액을 제친 것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생산하는 엔비디아가 인텔의 시총을 누른 지 3개월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엑슨모빌은 2000년대만 하더라도 시총 3위 내에 들 만큼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가 매출의 10%를 조금 넘는 재생에너지업체에 시총을 추월당했다는 소식이 증시를 흥분시켰다. 유가 하락이 큰 원인이었다. 코로나 기간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다윗 기업들의 분발이 역사적이다.

비주류 기업이 게임체인저 역할

엔비디아는 인텔 시총에 앞선 뒤 격차를 더 크게 벌리고 있다. 엔비디아의 시총은 10일 기준 3201억달러로 인텔(2077억달러)과 1000억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 50년 동안 반도체업계를 지배했던 인텔의 치욕이다. 테슬라 또한 전기차로 자동차 생태계를 뒤흔들었다. GM은 테슬라 시총의 9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넥스테라에너지와 엔비디아, 테슬라 모두 그 업계에선 이단아였다. 넥스테라도 전통 석유 메이저가 아니고 엔비디아 역시 그래픽 게임칩으로 성장한 업체였다. 테슬라는 출발할 때 원래 에너지 기업을 표방했다. 마이클 포터가 말하는 ‘잠재적 진입자’에도 포함시킬 수 없는 그런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디지털’과 ‘친환경’으로 무장했다.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개발과 데이터 처리에 각별했다.

넥스테라는 대기의 기압과 온도 압력 등 모든 기후 변화와 관련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슈퍼컴퓨터도 운용했다. 기후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는 넥스테라 애널리틱스라는 기업을 설립했다. 엔비디아도 컴퓨터그래픽에 집중하면서 데이터를 집적하고 그 속에서 GPU와 인공지능(AI) 칩 등을 개발했다.

이런 노력이 GPU가 자율주행 등에 핵심 칩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우리는 데이터 기업”이라고 말할 만큼 테슬라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관리 및 처리에 막강한 역량을 축적해왔다.

디지털 역량, 진입장벽 무너뜨려

정작 이들이 공략했던 에너지와 반도체, 자동차 업체들은 대부분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업종이다. 천문학적 고정비용이 들고 전후방 네트워크 효과가 크며 ‘규모의 경제’도 큰 기업이다. 자동차산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화 및 수직 통합으로 규모의 경제가 엄청나게 이뤄져 사실상 신규 진입이 불가능했다. 인텔 역시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80%를 차지하는 등 사실상 인텔 제국의 위상을 유지했다. 석유왕 록펠러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갖는 엑슨모빌은 고유가 시대를 주무른 초거대 석유 회사였다.

정작 이들 기업은 독점의 폐습인 관료화와 경영 방만함이 자주 지목됐다. 기업 내 정보통제도 강화하면서 역동성이 떨어지고 기민함이 사라졌다. 자만심도 엿보였다. 산업 내 경쟁자들이 없는 게 결정적 흠이었다. ‘오늘의 독점 기업은 내일의 패배자’라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독점을 틈타 새로운 기업들이 출현하고 있다. 더구나 신생 스타트업들은 디지털과 데이터, 소프트웨어로 중무장한 기업이다. 이들은 산업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하면서 기술의 공진화(共進化)도 이뤄냈다. 스티브 블랭크 컬럼비아대 교수는 “자본주의는 신산업과 신기업이 끊임없이 기존 오래된 기업을 해체시키기 위해 나타나는 진화적 과정”이라고 했다. 그 과정이 코로나 시기에 일어났다는 게 아이러니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