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 직전에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예정에 없던 원내대표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 규제 법안과 비쟁점 법안을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없이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과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반기업·친노동 법안들은 덕분에 아무런 제재 없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업규제 3법 등에 대한 반대토론에도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런 법안들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경제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174석 거대 여당’에 밀리는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기업 규제 3법 등에 대해 최소한 입법 지연에라도 나설 것이라는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기업규제 3법은 ‘졸속 입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민주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축조심사와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생략하거나 요식행위로 다뤘다.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회 간사인 성일종 의원은 “방대한 법조문을 눈으로 한 번 대강 보고 회의를 끝냈다”고 맹비난했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 이틀 전인 지난 7일에야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이 빠진 가운데 전문가 두 명이 약 30분간 법안 내용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쳤다.

함께 통과된 다른 법안들도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다. 이번에 의결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는 기존 선거법에 명시돼 있던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의 추천 절차 관련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선거법에서 삭제한 후보자 추천 절차 조항을 정당법으로 옮겨 공천 과정 등을 정당 자율에 맡긴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정당법 개정 전까지는 최소한의 투명성 담보 조항이 사라진 셈이어서 비례대표 선거가 ‘깜깜이’ 선거로 전락할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한참이지만 병원 인근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법안에 병원 등 시설의 옥외에서 예비후보자가 명함 등을 나눠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기업규제(공정경제) 3법으로 인한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원하는 법안을 마음껏 밀어붙이는 ‘뻔뻔한 여당’과 이를 막아낼 능력이 없는 ‘무능한 야당’으로 인한 피해는 벌써 국민의 삶 곳곳을 위협하고 있다. 민주적인 절차와 최소한의 통제 장치가 생략된 입법 폭주로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