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살고보자'…글로벌 에너지업계 M&A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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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모든 기업이 세력 확장을 위해 거래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업계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타를 맞은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M&A에 뛰어들고 있다. 수요 회복이 요원한 와중에 사업 영역이 유사한 기업끼리 합쳐 비용을 절감하고 현금 흐름을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사업 내용이 겹치는 중견기업간 M&A가 많다. 지난 8일엔 캐나다 화이트캡리소시즈가 TORC오일앤가스를 9억 캐나다달러(약 7665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화이트캡은 “TORC의 자산이 화이트캡의 핵심 사업과 맞아떨어져 현금흐름을 한해 약 1500만달러 더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엔 토르말린오일이 동종업계 주피터리소시즈를 4억9000만달러(약 5330억원)에, 모던리소시즈를 1억930만달러(약 119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9월엔 미국 데본에너지가 WPX에너지를 25억6000만달러(약 3조원)에 사들였다. 데이브 해거 데본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WPX와 합병하면 비용 절감을 할 수 있어 현금 흐름이 크게 개선된다”며 “엄청난 비용이 드는 셰일에너지 증산 경쟁에서 벗어나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사업 확장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M&A에 나섰다. 에너지산업 전문 투자은행인 튜더피커링홀트의 매트 머피 애널리스트는 “요즘 에너지업계 M&A는 양사간 시너지 효과를 도모해 다만 몇 달러라도 더 쥐어짜내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기업 모닝스타의 데이비드 메츠 애널리스트는 “각 기업이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공급원가를 낮출 수 있다”며 “가격·재고 변동에도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P글로벌은 “글로벌 에너지업계 중견·중소기업 대부분은 이미 자금기반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며 “코로나19로 꺾인 석유 수요가 크게 회복되지 않고 있어 각 기업이 지불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일메이저 기업 셰브런은 지난 7월 미국 텍사스 기반 노블에너지를 50억달러(약 5조4320억원)에 인수해 미국 내 시추권을 추가 확보하고 이스라엘 천연 가스전 사업에 진출했다. 마이클 워스 셰브런 CEO는 “비용효과적인 기회를 포착해 M&A에 나섰다”고 말다. 부채에 시달리는 기업을 낮은 비용으로 샀기 때문이다.
바루크 레브 미국 뉴욕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가 많은 중견·중소기업 경영을 약화시켰다”며 “이때문에 법적·금융적 자원을 보다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는 대기업이 몸값이 낮아진 작은 기업을 인수할 기회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앤디 브로건 언스트영(EY) 글로벌 석유·가스부문장은 “대기업이나 재무적으로 강한 중견 기업은 줄곧 전략적 M&A 기회를 보고 있다”며 “이번 위기가 그들에겐 기회”라고 말했다.
에너지분야 전문 투자은행 어포튠의 개리 피트맨 본부장은 “내년엔 살아남기 위해 M&A로 운영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들이 올해보다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2014~2016년에도 저유가에 경영난을 겪은 에너지 기업끼리 M&A가 활발했지만, 당시 유가 하락은 미국 셰일가스 혁명에 의해 공급이 증가한 탓에 일어났다”며 “반면 이번 저유가는 코로나19가 세계 전반에서 수요를 파괴해 일어났기 때문에 기업들의 생존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작년 에너지 수요가 역대 최대였던 것도 각 기업 경영난을 가중했다. 신규 투자 등 사업 확장에 나섰다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기업이 많아서다. 최근 국제 유가는 배럴당 40달러 후반선을 횡보하고 있다. 지난 4월 저점 대비로는 상당폭 올랐지만 여전히 연초 수준인 60달러선에 비해 크게 낮다. 반면 대부분 에너지기업은 올해 유가를 배럴당 55~65달러로 예상하고 올해 사업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대다수가 비용절감 위주로 사업 전략을 다시 짜고 있는 이유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이 탄소배출 규제에 나선 것도 에너지업계엔 상당한 부담이다. 씨티은행은 “업계가 저성장 모델로 전환하면서 각 에너지기업이 M&A 등을 통해 수익을 유지·창출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일단 살고보자' 중견기업간 M&A 급증
최근 북미 에너지업계에선 M&A 거래 규모가 눈에 띄게 늘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석유·가스기업 M&A 거래액은 271억달러를 넘겼다. 직전 분기(약 19억달러) 대비 약 14배 수준이다.사업 내용이 겹치는 중견기업간 M&A가 많다. 지난 8일엔 캐나다 화이트캡리소시즈가 TORC오일앤가스를 9억 캐나다달러(약 7665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화이트캡은 “TORC의 자산이 화이트캡의 핵심 사업과 맞아떨어져 현금흐름을 한해 약 1500만달러 더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엔 토르말린오일이 동종업계 주피터리소시즈를 4억9000만달러(약 5330억원)에, 모던리소시즈를 1억930만달러(약 119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9월엔 미국 데본에너지가 WPX에너지를 25억6000만달러(약 3조원)에 사들였다. 데이브 해거 데본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WPX와 합병하면 비용 절감을 할 수 있어 현금 흐름이 크게 개선된다”며 “엄청난 비용이 드는 셰일에너지 증산 경쟁에서 벗어나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사업 확장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M&A에 나섰다. 에너지산업 전문 투자은행인 튜더피커링홀트의 매트 머피 애널리스트는 “요즘 에너지업계 M&A는 양사간 시너지 효과를 도모해 다만 몇 달러라도 더 쥐어짜내려는 시도가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기업 모닝스타의 데이비드 메츠 애널리스트는 “각 기업이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공급원가를 낮출 수 있다”며 “가격·재고 변동에도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P글로벌은 “글로벌 에너지업계 중견·중소기업 대부분은 이미 자금기반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며 “코로나19로 꺾인 석유 수요가 크게 회복되지 않고 있어 각 기업이 지불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일메이저'는 부채기업 헐값에 인수
저유가에 휘청이는 기업을 글로벌 에너지기업이 기존 대비 저가에 사들이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월엔 세계 7대 ‘오일 메이저’ 중 하나인 미국 코노코필립스가 텍사스 기반 에너지기업 콘초리소시스를 97억달러(약 10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그간 성장 전망이 뚜렷하지 않았던 코노코필립스가 저가로 원유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콘초 인수에 나섰다”며 “덕분에 생산 포트폴리오가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보도했다.오일메이저 기업 셰브런은 지난 7월 미국 텍사스 기반 노블에너지를 50억달러(약 5조4320억원)에 인수해 미국 내 시추권을 추가 확보하고 이스라엘 천연 가스전 사업에 진출했다. 마이클 워스 셰브런 CEO는 “비용효과적인 기회를 포착해 M&A에 나섰다”고 말다. 부채에 시달리는 기업을 낮은 비용으로 샀기 때문이다.
바루크 레브 미국 뉴욕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가 많은 중견·중소기업 경영을 약화시켰다”며 “이때문에 법적·금융적 자원을 보다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는 대기업이 몸값이 낮아진 작은 기업을 인수할 기회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앤디 브로건 언스트영(EY) 글로벌 석유·가스부문장은 “대기업이나 재무적으로 강한 중견 기업은 줄곧 전략적 M&A 기회를 보고 있다”며 “이번 위기가 그들에겐 기회”라고 말했다.
"내년엔 올해보다 M&A 더 많을 것"
전문가들은 한동안 에너지업계에서 중소·중견기업 위주 M&A가 더 많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석유 수요가 큰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어서다. 드웨인 딕슨 딜로이트 부회장 겸 석유가스화학부문장은 “서로 비슷한 규모인 중견·중소기업인 생존을 위해 합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에너지분야 전문 투자은행 어포튠의 개리 피트맨 본부장은 “내년엔 살아남기 위해 M&A로 운영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들이 올해보다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2014~2016년에도 저유가에 경영난을 겪은 에너지 기업끼리 M&A가 활발했지만, 당시 유가 하락은 미국 셰일가스 혁명에 의해 공급이 증가한 탓에 일어났다”며 “반면 이번 저유가는 코로나19가 세계 전반에서 수요를 파괴해 일어났기 때문에 기업들의 생존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작년 에너지 수요가 역대 최대였던 것도 각 기업 경영난을 가중했다. 신규 투자 등 사업 확장에 나섰다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기업이 많아서다. 최근 국제 유가는 배럴당 40달러 후반선을 횡보하고 있다. 지난 4월 저점 대비로는 상당폭 올랐지만 여전히 연초 수준인 60달러선에 비해 크게 낮다. 반면 대부분 에너지기업은 올해 유가를 배럴당 55~65달러로 예상하고 올해 사업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대다수가 비용절감 위주로 사업 전략을 다시 짜고 있는 이유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이 탄소배출 규제에 나선 것도 에너지업계엔 상당한 부담이다. 씨티은행은 “업계가 저성장 모델로 전환하면서 각 에너지기업이 M&A 등을 통해 수익을 유지·창출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