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상징’으로 꼽혔던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이 본사를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에서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이전했다. 창업의 성지로 꼽혔던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실리콘밸리가 높은 세율과 기업 규제 탓에 ‘기업하기 어려운 도시’로 전락했다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는 지적이다.

12일(현지시간) 오라클에 따르면 이 회사는 “성장을 위한 최선책을 고민한 결과 본사 이전이 더 많은 유연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이 같이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 개월 간 재택근무를 실시해온 결과 본사 이전에 따른 불이익이 당초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오라클은 상당수 직원에게 근무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거나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할 계획이다.

본사를 옮겼지만 레드우드시 건물을 폐쇄하는 건 아니다. 오라클은 레드우드뿐만 아니라 오스틴, 산타모니카, 시애틀, 덴버, 올랜도 등 주요 지역의 사무실을 계속 지원하고 다른 장소를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43년 전인 1977년 샌타클래라에서 설립된 오라클은 1989년 레드우드시로 터전을 옮겼다. 미국프로야구(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에 대한 작명 권한을 사들여 이 구장에 ‘오라클 파크’란 이름을 붙였다. 최대주주는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으로, 지분 36%를 소유하고 있다.

오라클의 탈(脫) 캘리포니아엔 높은 세금과 기업 규제가 한 몫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내 최고 세율로 악명이 높다. 개인 소득세율은 최고 13.3%다.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해온 뉴저지(10.75%), 미네소타(9.85%), 뉴욕(8.82%) 등도 마찬가지다. 반면 텍사스엔 주 차원의 소득세가 없다.

또 캘리포니아의 주 법인세율은 8.84%(단일 세율)인 데 비해 텍사스에선 ‘제로’다. 오라클은 작년에만 1억7220만달러를 주 법인세로 납부했다.

오라클 외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인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도 이달 초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본사를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이전했다. HPE는 2015년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인 HP에서 분리된 회사다.

유명 벤처사업가 조 론스데일이 설립한 ‘8VC’와 클라우드 업체 드롭박스도 실리콘밸리를 떠나 텍사스 오스틴으로 본사를 옮긴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 역시 최근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로 이사했다고 밝혔다. 머스크가 1995년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캘리포니아에 둥지를 튼 지 25년 만이다.

머스크는 언론 인터뷰에서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광범위한 규제와 관료주의로 스타트업 탄생을 억누르고 있다”며 “주 정부는 혁신가들을 훼방놓지 말라”고 비판했다. 기업 규제가 그를 떠나게 만든 첫 번째 원인이었다는 설명이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