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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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일 만의 인류의 반격.’ 영국 정부가 지난 8일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독일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일반접종을 시작하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첫 코로나19 감염자가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된 지 343일 만이었다.

화이자 백신 최선봉에 선 '그리스인 수의사'…'광속' 개발팀 꾸려 코로나와 343일 사투 승기
영국이 세계 최초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개시한 이날 화이자의 주가는 전날보다 3.18% 상승한 42.56달러에 마감하며 올 들어 최고점을 찍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 3월 저점(26.99달러) 대비 60% 가까이 뛴 것이다. 화이자 백신은 지난달 최종 임상시험에서 95%에 이르는 예방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소식은 1년 가까이 지속돼온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인류가 승기를 잡을 것이란 기대를 확산시켰고,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59)는 ‘세상을 구한 그리스인’이란 칭송까지 받았다. 그리스 태생의 불라 CEO는 아리스토텔레스대 수의학과를 졸업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올인’

불라 CEO는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던 올해 3월 중순 회사의 백신 개발자들을 불러모았다. 필립 도미처 화이자 수석개발자에게는 “지금부터 당신의 임무는 코로나19 백신을 만드는 것”이라며 “무엇이든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했다. 그는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화이자보다 먼저 백신 개발에 들어갔던 바이오엔테크와 7억5000만달러에 이르는 백신 개발 파트너십도 맺었다. 바이오엔테크는 작고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광속(lightspeed)’이란 이름의 개발팀을 꾸려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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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라 CEO는 우구르 사힌 바이오엔테크 CEO를 만나러 독일을 찾았다. 두 사람은 백신이 생산될 오스트리아 공장을 함께 방문해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두 회사의 백신 개발자들은 몇 주씩 가족도 보지 못하고 회사에 남아 일했다. 엄격한 감염 예방 수칙도 따라야 했다. 손잡이를 만질 수 없도록 연구실의 모든 문은 열려 있었고, 접촉하는 모든 사람의 명단을 작성해야 했다.

백신 개발 프로젝트는 공동 연구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인 7월 말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다.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에서 4만4000명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이후 11월 초 중간 분석 결과 90% 넘는 예방 효과를 보였고, 최종 분석 결과는 95%까지 올랐다. 불라 CEO는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터널 끝에서 마침내 빛을 볼 수 있게 됐다”며 “(백신 개발은) 과학과 인류에 축복”이라고 말했다.

27년 근무한 ‘화이자맨’

1961년생인 불라 CEO는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테살로니키 출신이다. 현재 국적도 그리스다.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대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졸업 이후에는 한동안 수의사로 일했다. 1993년 화이자에 처음 입사해 수의학 기술부장을 지냈다.

34세가 되던 해 그는 부인과 함께 그리스를 떠나 화이자 유럽본부에 합류했다. 2005~2009년에는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 화이자 동물보건부문 사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2009~2010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담당 사장을 지냈다. 또 화이자의 글로벌 백신, 온콜로지(종양학), 소비자 헬스케어 부문 대표도 역임했다. 2018년 화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진했고 작년 1월 1일 화이자 CEO가 됐다. 그는 화이자에서만 27년 넘게 근무 중이다.

불라 CEO는 고국 그리스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지난해 4월에는 그리스 주재 미국대사로부터 ‘가장 선구적인 그리스 지도자상’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테살로니키에 화이자 ‘디지털 허브 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 센터는 화이자가 세계에 세우는 6개 연구시설 중 하나다. 이들 센터에서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 분석 기술 등을 개발해 화이자 의약품과 백신 개발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불라 CEO는 백신 개발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 ‘주식 매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백신 예방 효과를 발표한 지난달 9일 보유하고 있던 화이자 주식의 62%를 560만달러(약 61억원)에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화이자 대변인은 “주식 매각은 개인의 재무 계획이자, 규정에 따라 사전에 결정된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CEO가 자사주를 팔기로 한 날에 맞춰 화이자가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매각은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이뤄졌지만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