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은 지난달 26일 177명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165명을 승진시켰던 지난해보다 인사 폭이 컸다. 인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부분도 있다. LG그룹이 올 들어 외부에서 영입한 임원은 23명. 16명을 뽑았던 지난해보다 영입 규모가 늘었다. 이들을 합하면 올해에만 200명 안팎의 ‘인재’가 새로 임명된 셈이다. 올해 LG그룹 인사를 놓고 ‘조용한 혁명’이란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2018년 취임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인사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부에서 뽑은 전문가들과 내부에서 발탁한 45세 이하 임원들(24명)을 전진 배치해 ‘젊은 LG’ 이미지를 굳히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구광모 회장이 깬 'LG 순혈주의'…외부 능력자 영입 확 늘었다

신학철 부회장 영입이 신호탄

13일 LG그룹에 따르면 외부에서 영입한 임원 숫자가 매년 늘고 있다. 2016년 11명, 2017년 12명, 2018년 13명 등으로 조금씩 증가했던 외부 영입 임원 숫자가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은 16명을 선발한 지난해부터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영입 인원을 40%가량 더 늘려 23명을 뽑았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 글로벌 영업망 구축 등에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외부 인재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LG그룹 관계자는 “2018년 3M 수석부회장이었던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이후 LG그룹의 인사 전략이 확 달라졌다”며 “LG그룹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순혈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라고 말했다.

LG그룹이 영입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인재는 디지털 전환 전문가다. 올해 영입 임원 중 30% 이상이 디지털 전환과 AI 관련 인력이다. LG CNS의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지난 7월 합류한 윤형봉 부사장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LG CNS는 LG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담당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 티맥스소프트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윤 부사장은 LG CNS의 중장기 사업 전략을 수립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LG CNS 커스터머 데이터 플랫폼 담당으로 지난 3월 영입된 롯데멤버스 부문장 출신인 황윤희 상무, LG화학에서 디지털 전환을 담당하는 IBM 출신 박진용 상무도 디지털 역량 강화라는 특명을 받은 인재다.

해외 영업 조직도 보강

11월 임원 인사 때 합류한 이석우 LG전자 전무는 해외에서 LG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다. 이 전무는 미국 국립표준기술원(NIST)과 백악관 사물인터넷(IoT) 부문 혁신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신사업 모델 발굴을 주도하는 신설 조직인 북미이노베이션센터를 이끌 예정이다. 지난 7일 출범한 ‘LG AI연구원’에서 수석 AI 과학자(CSAI)를 맡게 된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도 LG그룹이 기대를 걸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구글의 AI 연구조직인 ‘구글브레인’에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등을 지냈다.

LG그룹의 또 다른 영입 타깃은 ‘글로벌 영업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글로벌 공급망 전략이 바뀐 영향이다. 해외에 생산 거점을 늘리고 글로벌 기업들과의 제휴 업무를 진행할 인재에 대한 수요가 상당하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LG화학이 석유화학사업본부 글로벌사업추진담당으로 영입한 허성우 부사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허 부사장은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석유기업인 BP코리아 대표 등을 지냈다. 미국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스프린트의 지역 대표 출신인 정수헌 LG전자 부사장, 헨켈코리아 대표, OCI 임원 등을 거친 뒤 LG화학 엔지니어링소재사업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스티븐 전무 등도 LG그룹이 글로벌 영업 강화를 목적으로 데려온 인재로 꼽힌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