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청구 한도 전환율과 연동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청구를 거짓으로 거절당해 퇴거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집주인이 본인이나 직계존·비속의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낸 뒤 실제론 다른 임차인을 들이는 경우 등이다.
문제는 손해배상의 규모다. 임대차법은 세입자의 보증금을 월차임으로 환산해 손해배상액을 계산하도록 정하고 있다. 환산 비율은 전월세전환율에 따른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9월 전셋값 불안을 막겠다며 종전 4%이던 전월세전환율을 2.5%로 내렸다. 세입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금액도 그만큼 내려간 셈이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3억원을 내고 살던 세입자A를 부당하게 쫓아내고 다른 세입자B를 5억원에 들였다고 가정해보자. 종전 전월세전환율(4%)을 적용했을 때 A가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 금액은 자신의 보증금(3억원)을 3개월치 월차임으로 환산한 300만원과 증액된 2억원을 2년치 월차임으로 환산한 1600만원 가운데 더 큰 값인 1600만원이다.
그러나 전월세전환율이 2.5%로 내려간 탓에 A가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1000만원으로 확 줄어든다. 자신의 보증금을 3개월치 월차임으로 환산한 186만원과 증액분을 2년치 월차임으로 환산한 1000만원 가운데 큰 값을 적용한 결과다. 한 임대차 전문 변호사는 “세입자가 보상받을 수 있는 금액 수준을 감안하면 변호사 수임료는 더욱 내려간다”며 “그 정도 가격으로 소송에 착수할 변호사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부당하게 쫓아내는 상황이 확산할 것으로 우려한다. 당장 손해배상을 하게 되더라도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면서 보증금을 증액하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바뀌는 신규 임대차계약엔 전월세상한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신태호 법무법인 한틀 대표변호사는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비용 등을 제하면 세입자의 실익이 거의 없다”며 “정부가 계약갱신청구권의 안전장치로 손해배상을 도입했지만 사실상 사문화될 조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