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구글, 페이스북 등 빅테크(거대 정보기술(IT) 기업)를 겨냥해 반(反)독점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유럽도 빅테크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나섰다. 일부 IT 업체의 ‘승자 독식’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15일(현지시간) 대형 IT 기업들이 불공정 경쟁을 지속할 경우 기업 분할까지 명령할 수 있는 법안 초안을 공개했다.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정부는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위반 혐의로 트위터에 벌금 45만유로(약 6억원)를 처음 부과했다.

유럽도 “빅테크 분할 명령할 수도”

"독점땐 기업분할"…美 이어 EU도 빅테크에 '칼' 꺼냈다
EU가 마련한 빅테크 견제 법안은 디지털 시장법과 서비스법 두 가지다. 디지털 시장법은 경쟁사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인수합병(M&A) 땐 당국에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에게서 얻은 정보의 사용도 엄격히 제한한다. 디지털 서비스법은 소셜미디어 등이 대상이다. 해당 기업은 불법 콘텐츠의 유통·확산을 적극 차단해야 한다.

문제는 벌칙 조항이다. 두 법을 어기면 해당 기업이 글로벌 매출의 최대 10%를 벌금으로 내도록 했다. 반복 위반하면 EU 내 플랫폼 운영이 중단되고 자산 매각 또는 기업 분할 명령을 받을 수 있다. 마그레테 베스타거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소비자들이 다양한 제품 및 안전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모든 기업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사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EU는 특정 기업을 거론하지 않고 ‘게이트 키퍼(문지기)’ 업체들이 대상이라고 밝혔다. 게이트 키퍼는 시장지배력이 크고 소비자와 기업 간 관문 역할을 하는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현지에선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의 대표 IT 기업들이 타깃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AFP통신은 “미국 기업과 함께 한국의 삼성전자,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등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아일랜드가 이날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트위터에 부과한 벌금은 빅테크에 대한 EU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엔 트위터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의 유럽 본사가 있다. 아일랜드는 다른 IT 기업으로 정보유출 조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IT 업체들 “특정 기업 마녀사냥” 반발

EU의 빅테크 견제 법안이 시행되려면 27개 회원국 및 유럽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법제화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베스타거 위원은 CNBC 인터뷰에서 “조기 시행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2년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앞서 미국 정부도 대형 IT 기업들을 압박해왔다. 독점적 지배력을 무기로 경쟁사를 고사시키는 등 문어발식 확장을 해왔다는 이유에서다. 미 하원 반독점소위원회는 지난 10월 애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4개 기업의 직접 규제를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같은 달 미 법무부는 구글을 대상으로, 이달 9일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및 46개 주(州) 정부는 페이스북을 대상으로 각각 법원에 소송을 냈다. 반독점법 위반 혐의다. FTC는 페이스북의 기업 분할 명령까지 청구했으며 FTC는 아마존에 대해서도 반독점 행위를 조사 중이다. 올 1월 EU에서 탈퇴한 영국 역시 지배적 온라인 사업자를 직접 규제할 수 있는 법안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빅테크들은 이런 기류가 일종의 마녀사냥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구글은 EU의 디지털법 초안이 공개되자 “특정 기업을 겨냥한 법안”이라며 “기술 혁신과 성장을 훼손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아마존도 “모든 기업에 동일한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빅테크들이 실제로 쪼개지는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1998년 미 법무부가 MS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해 1심에서 기업 분할 명령이 내려졌지만 결국 합의로 마무리됐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