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민주화운동 했다고 얘기 말라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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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지 7분 만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을 의결하려 하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항의하며 던진 말이다. 과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는 민주당 사람들이 이미 합의된 '야당 거부권'을 쏙 빼버린 법 개정안을 다시 완력으로 밀어붙이니 울화통이 터졌을 법 하다.
민주당도 오랫동안 염원해온 권력기관 개혁 입법이라고는 하지만, 국회를 거대여당 폭주와 입법독재의 장(場)으로 만들었다는 비판 앞에 뭐라 대꾸하기 군색했을 것이다. 윤호중 법사위원장(민주당)이 기껏 응수한다는 말이 "독재의 꿀을 빨던 사람들이…" 였다. 내가 '겨'가 묻긴 했지만, 너도 '똥' 묻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순간 문득 떠오른 의문은 '과연 지금의 민주당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기나 한 것일까' 라는 점이다. 그들 상당수가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선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데모'와 경찰 연행, 구속과 투옥이 민주화 운동이고, 그렇게 용기있게 나선 이를 민주주의 투사라 여기던 때였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민주당 핵심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항거했던 '다수의 횡포'를 그대로 따라하며 민주주의 파괴와 연성·대중독재를 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듣고 있다. 며칠 새 공수처법 개정안은 물론 기업규제 3법, 5·18역사왜곡처벌법, 노조법, 국정원법, 대북전단금지법 등 100여건의 법 제·개정안이 폭풍 몰아치듯 국회를 통과했다. 대부분 제대로 된 국회 토의나 이해관계자 의견 반영, 미비점 보완 없이 민주당 뜻대로 관철됐다. '민주화 운동 했다는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민주적 기본질서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행태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가설을 하나 세워 봤다. 민주당 586 주요 인사들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한 게 아니라, '정권반대 운동'을 했을 뿐이라고 평가해보면 어떨까. 나는 누구보다 선(善)하고 정의로우며, 누구보다도 개인 안위를 돌보지 않고 희생해왔다는 점을 들어 자신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추론까지 해보는 것은 그만큼 과거 학생운동이나 재야운동권에 자기주장과 반골 기질이 강하고, 포용적 사고보다는 분파적이고 대립적인 사고를 많이 하며, 남보다 잘났고 앞에 서길 좋아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 강력한 자기연민에 빠진 인물들이 많았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교육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그들 또한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없긴 했다. 그저 군사독재정권 반대 투쟁만 했던 사람들이다.
문제는 김영삼 문민정부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주춧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과정에서 민주적 소양과 자질을 함양하고, 대중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단련이 필요했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에 조종(弔鐘)이 울리고 있는 것은 이런 단련과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정권반대 투사'들이 정부와 여당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부터가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개정 공수처법 공포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서 공수처에 대해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라고 했다. 검찰 개혁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필수 불가결하다면 공수처 출범 과정 자체도 민주적 협의와 절차를 거치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실현해가는 가장 기초작업이다. 그런데도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거부권을 묵살하는 법 개정을 묵인하면서까지 공수처 내년 출범이라는 일정에 집착했어야 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공수처에 거는 대통령과 여권의 기대가 이렇듯 대단한데, 그들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이 어떻게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다음 날인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2개월 직무정지 징계안을 재가한 것은 정치적 중립에서 일탈한 검찰권을 공수처가 강력 견제하고 수사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대통령이 강조한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은 어디로 갔는지 희미해지고, '검찰로부터의 독립과 중립' 과제만 남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며칠 전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SNS 글도 충격적이다. 그는 "이번에 통과한 법(공수처법)에 반대한다면 국민의힘이 다음 총선에서 다수당이 돼 개정안을 내면 된다"고 했다. 이어 "총선에서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펴는 것은 국회 표결방법이 다수결이기 때문"이라며 "그 민주적 방식에 따라 공수처법 개정안과 국정원법 개정안 등이 표결처리 됐다"고 했다. 그리고는 "초등학생도 아는 이 민주주의 이치를 입 아프게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썼다.
이는 민주주의 제도의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다수결 원칙을 '다수라면 무엇이든 결행할 수 있다'는 다수의 횡포로 잘못 이해한 결과다. 다수에 밀릴 수밖에 없는 소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의 간극을 좁히려 노력하고, 다수의 완력을 함부로 사용치 않는 견제장치를 여러 법제도에 마련해놓은 민주제도의 원리를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인 것이다. 이름깨나 알려진 여당 정치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배 아프면 너희들도 다수가 돼라'는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 제안해본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 대해 '민주화 운동 세력'이니, '민주화 운동 출신'이니 하는 호칭이나 수식을 달지 않았으면 한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옹호해온 '가치 추구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들의 정파이익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집과 불통만 남았을 뿐이다.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혹여라도 있다면 이번 기회에 말끔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자들 앞에 과거 젊은 날의 투옥 경험이 무슨 대수일 수 있겠나. 이제는 자신들이 독재의 꿀을 빠는 게 아니라 아예 독재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입만 열면 사회적 약자 보호, 노동자 권익 옹호, 재벌의 탐욕 비판, 검찰 등 권력기관과 보수언론의 문제를 떠들어온 게 30년도 더 된다. 옛날 식 패러다임과 프레임에 갇혀 인식이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는데, 어물쩍 정권도 잡고 180석 가까운 거대여당이 됐다. 기본 인식과 자질이 안된 이들에게 나라의 민주주의를 맡겨서 되겠나.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민주당도 오랫동안 염원해온 권력기관 개혁 입법이라고는 하지만, 국회를 거대여당 폭주와 입법독재의 장(場)으로 만들었다는 비판 앞에 뭐라 대꾸하기 군색했을 것이다. 윤호중 법사위원장(민주당)이 기껏 응수한다는 말이 "독재의 꿀을 빨던 사람들이…" 였다. 내가 '겨'가 묻긴 했지만, 너도 '똥' 묻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순간 문득 떠오른 의문은 '과연 지금의 민주당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기나 한 것일까' 라는 점이다. 그들 상당수가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선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데모'와 경찰 연행, 구속과 투옥이 민주화 운동이고, 그렇게 용기있게 나선 이를 민주주의 투사라 여기던 때였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민주당 핵심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항거했던 '다수의 횡포'를 그대로 따라하며 민주주의 파괴와 연성·대중독재를 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듣고 있다. 며칠 새 공수처법 개정안은 물론 기업규제 3법, 5·18역사왜곡처벌법, 노조법, 국정원법, 대북전단금지법 등 100여건의 법 제·개정안이 폭풍 몰아치듯 국회를 통과했다. 대부분 제대로 된 국회 토의나 이해관계자 의견 반영, 미비점 보완 없이 민주당 뜻대로 관철됐다. '민주화 운동 했다는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민주적 기본질서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행태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가설을 하나 세워 봤다. 민주당 586 주요 인사들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한 게 아니라, '정권반대 운동'을 했을 뿐이라고 평가해보면 어떨까. 나는 누구보다 선(善)하고 정의로우며, 누구보다도 개인 안위를 돌보지 않고 희생해왔다는 점을 들어 자신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추론까지 해보는 것은 그만큼 과거 학생운동이나 재야운동권에 자기주장과 반골 기질이 강하고, 포용적 사고보다는 분파적이고 대립적인 사고를 많이 하며, 남보다 잘났고 앞에 서길 좋아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 강력한 자기연민에 빠진 인물들이 많았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교육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그들 또한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없긴 했다. 그저 군사독재정권 반대 투쟁만 했던 사람들이다.
문제는 김영삼 문민정부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주춧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과정에서 민주적 소양과 자질을 함양하고, 대중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단련이 필요했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에 조종(弔鐘)이 울리고 있는 것은 이런 단련과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정권반대 투사'들이 정부와 여당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부터가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개정 공수처법 공포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서 공수처에 대해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라고 했다. 검찰 개혁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필수 불가결하다면 공수처 출범 과정 자체도 민주적 협의와 절차를 거치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실현해가는 가장 기초작업이다. 그런데도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거부권을 묵살하는 법 개정을 묵인하면서까지 공수처 내년 출범이라는 일정에 집착했어야 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공수처에 거는 대통령과 여권의 기대가 이렇듯 대단한데, 그들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이 어떻게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다음 날인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2개월 직무정지 징계안을 재가한 것은 정치적 중립에서 일탈한 검찰권을 공수처가 강력 견제하고 수사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대통령이 강조한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은 어디로 갔는지 희미해지고, '검찰로부터의 독립과 중립' 과제만 남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며칠 전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SNS 글도 충격적이다. 그는 "이번에 통과한 법(공수처법)에 반대한다면 국민의힘이 다음 총선에서 다수당이 돼 개정안을 내면 된다"고 했다. 이어 "총선에서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펴는 것은 국회 표결방법이 다수결이기 때문"이라며 "그 민주적 방식에 따라 공수처법 개정안과 국정원법 개정안 등이 표결처리 됐다"고 했다. 그리고는 "초등학생도 아는 이 민주주의 이치를 입 아프게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썼다.
이는 민주주의 제도의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다수결 원칙을 '다수라면 무엇이든 결행할 수 있다'는 다수의 횡포로 잘못 이해한 결과다. 다수에 밀릴 수밖에 없는 소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의 간극을 좁히려 노력하고, 다수의 완력을 함부로 사용치 않는 견제장치를 여러 법제도에 마련해놓은 민주제도의 원리를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인 것이다. 이름깨나 알려진 여당 정치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배 아프면 너희들도 다수가 돼라'는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 제안해본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 대해 '민주화 운동 세력'이니, '민주화 운동 출신'이니 하는 호칭이나 수식을 달지 않았으면 한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옹호해온 '가치 추구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들의 정파이익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집과 불통만 남았을 뿐이다.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혹여라도 있다면 이번 기회에 말끔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자들 앞에 과거 젊은 날의 투옥 경험이 무슨 대수일 수 있겠나. 이제는 자신들이 독재의 꿀을 빠는 게 아니라 아예 독재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입만 열면 사회적 약자 보호, 노동자 권익 옹호, 재벌의 탐욕 비판, 검찰 등 권력기관과 보수언론의 문제를 떠들어온 게 30년도 더 된다. 옛날 식 패러다임과 프레임에 갇혀 인식이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는데, 어물쩍 정권도 잡고 180석 가까운 거대여당이 됐다. 기본 인식과 자질이 안된 이들에게 나라의 민주주의를 맡겨서 되겠나.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