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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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미국의 봉쇄 전략에 맞서 내년 경제의 중요 목표로 자주적 산업망과 공급망 구축을 제시했다. 독자적인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내수 경제를 활성화해 독자 발전 체계를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중국의 핵심 반도체 기업인 SMIC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등 자국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 통로를 줄여가고 있다.

갑작스런 경제 정책 변화 없다

20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내년 경제 운영 방향을 정하는 중앙경제공작(업무)회의를 지난 16~18일 열었다. 중국의 연간 경제정책은 전년 10월께 열리는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에서 골격을 정하고, 경제공작회의에서 구체화한 다음 매년 3월께 최고입법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확정한다.

이번 회의는 15차 5개년계획(2021~2025년)과 2035년까지의 중장기 발전 전략을 내년부터 실행에 옮긴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중국 지도부는 회의를 거쳐 제시한 8대 중점 추진사항으로 우선 '자주적 과학기술 역량 강화'와 '산업망·공급망 통제 능력 향상'을 제시했다.

과학기술 역량 강화는 미국의 제재가 모든 첨단 산업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에 집중된 데 대한 대응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와 SMIC 등은 미국의 허가 없이 해외 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살 수 없으며,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 부품, 장비도 쓸 수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경제 관련 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과학기술을 강조했다.

중국 지도부는 또 "산업망과 공급망은 안전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면서 "이는 새로운 발전 패턴을 만드는 기초"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초 부품과 기술, 소재의 기반을 확고히 다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역시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 구조를 확립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중국은 거대 인터넷기업들에 대한 반독점 규제 강화 의지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을 방지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대도시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게 내년 경제 임무의 핵심 중 하나라는 점도 짚었다. 중국에선 도시 집값이 농어촌에 비해 현저히 비싸고 상승세도 가팔라 전국적 빈부 격차를 가속화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또 내년 거시경제 정책을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유지할 것이며, 경제 회복을 위해 선제적 재정정책과 신중한 금융정책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정책을 운영할 필요가 있으며 갑작스러운 변화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중국 기업 추가 제재

미국 상무부는 중국 최대이자 세계 5위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SMIC와 세계 최대 드론 제조업체 DJI를 18일(현지시간) 무역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과 계열사는 총 77개이며, 이 중 중국 기업은 60개로 집계됐다.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은 SMIC에 대한 제재는 중국의 군민(軍民) 융합 정책 활동에 대응하는 것이며, SMIC가 첨단 기술인 10(㎚·나노미터) 이하의 반도체 생산 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MIC의 현재 기술은 14㎚ 수준이며, 5㎚ 공정을 이미 개발한 삼성전자나 대만 TSMC에 비하면 차이가 있다.

향후 SMIC가 미국 공급업체로부터 핵심 부품을 들여오려면 미 상무부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상무부는 지난 9월에도 미국 기업이 SMIC에 특정 장비를 공급하려면 수출 면허를 취득하도록 조치했다. 또 미 국방부는 최근 SMIC 등을 중국군이 소유·통제하는 기업으로 분류하고 미국 투자자가 내년 11월부터 이들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을 제한했다.

상무부는 또 인체정보 수집 및 분석, 첨단감시 기술 악용을 통한 중국 내 광범위한 인권 유린 혐의로 DJI를 리스트에 추가했다. 현재 상무부의 거래 금지 목록에는 이미 275개가 넘는 중국 기업이 들어있다.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 안면인식 기술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되는 하이크비전 등이 포함돼 ㅇㅆ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을 향해 "외국 기업을 탄압하는 잘못된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중국은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며 대등한 보복을 시사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