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심각하지 않아 초기 백신 확보에 소홀했다는 정부 입장이 나왔다. 당시 국내 감염자가 적어 백신을 구하는 게 급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면역을 형성하는 백신은 확진자가 적을수록 더 필요한 수단이다. 정부가 백신 확보 단계 초기부터 감염병 집단면역에 대해 오판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0일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지난 7월 백신 태스크포스(TF)팀이 가동될 때는 국내 확진자가 100명 정도라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환자가 많은 나라는 다국적 제약사의 백신 개발비를 미리 댔다”며 “개발비를 댄 나라와 그냥 구매하는 나라는 차등을 둘 것이기 때문에 국내는 (백신 도입이) 늦어진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정부는 그동안 6월 말 백신TF를 가동하고 백신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해왔다. 다른 나라보다 국내 백신 접종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선 “다른 나라의 부작용 사례를 확인한 뒤 접종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 총리의 설명대로라면 TF 가동 초기에 개발비 지원 등의 형태로 백신 물량 확보 계획을 세울 수 있었지만 국내 방역 상황만 믿고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백신 확보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확진자가 많은 미국 유럽 등과 달리 한국은 감염 후 생기는 자연 면역을 지닌 사람이 극소수라는 이유에서였다. 면역을 얻는 방법은 백신밖에 없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었다.

인력을 투입해 모든 확진자와 접촉자를 추적·관리하는 K방역은 확진자가 늘면 힘을 쓰지 못한다. 유행이 장기화할수록 인력 소진이 심해지고 사태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유행 확산을 막는 백신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영국 미국 등에선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국내에선 일러야 내년 2, 3월께 의료진과 고위험군 등에 접종이 가능한 상황이다.

정 총리는 이날 “화이자와 모더나백신은 내년 1분기 내에 접종이 어렵다”며 “거리두기 3단계 조치를 수도권 등에 국지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의사 국가시험 재응시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서도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시험은 없다던 정부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섰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