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미국의 헤지펀드가 ‘먹잇감’ 탐색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투자은행(IB)업계 고위관계자는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대주주 지분이 낮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계 자본의 이사회 참여 요구가 잇따를 조짐”이라며 이같이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운신’의 폭이 넓어진 투기성 해외자금들이 대주주 의결권이 취약해진 국내 대기업들의 허점을 파고들 것이라는 경고다.
카카오 등 감사위원 3명 모두 새로 뽑아야…기업들 주총 '초비상'

‘주총 통과할까’ 우려

국내 대기업들이 내년 3월 주총을 앞두고 벌써부터 비상이 걸렸다.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최소 한 명 이상 분리 선임하고, 이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각각 3%로 제한하는 개정 상법 때문이다.

20일 한국경제신문이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 102명의 감사위원 임기를 분석한 결과 22개 기업, 31명의 감사위원 임기가 내년 3월 끝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는 시총 상위 10개 기업 중 7곳이 들어 있다. 이들 기업은 감사위원을 재선임하거나 새로 뽑아야 한다.

이 가운데 걱정이 큰 기업들은 감사위원을 세 명으로 구성한 곳이다. 무조건 한 명 이상을 분리해서 재선임 또는 선임해야 한다. 삼성전자, LG화학, 카카오, 기아자동차, 포스코, 엔씨소프트, SK이노베이션 등이 그렇다. 카카오의 경우 감사위원 세 명 모두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개정 상법에 따르면 카카오의 대주주 측 지분은 주주별 3% 제한을 받게 돼 26.3%에서 6.3%로 줄어든다. 외국기관투자 지분 합계(13.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감사위원회를 사외이사 세 명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이 중 임기가 내년 3월까지인 한 명을 재선임하거나 새로 뽑아야 한다. 내년 주총에서 삼성전자의 대주주 측 의결권은 12.2%로 제한돼 외국계 기관 합계(27.6%)에 턱없이 못 미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처음으로 분리 선임하는 감사위원인 만큼 시장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라며 “기업으로선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감사위원 수 줄일까’ 고민도

감사위원이 4~5명인 곳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임기가 끝나는 감사위원이 한두 명 있더라도 자리를 채우지 않는 것이다. SK하이닉스, 네이버,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SK텔레콤 등이 그런 사례다.

현대차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이 다섯 명이다. 이 중 두 명의 임기가 내년 3월 종료된다. 따라서 임기가 끝나는 감사위원 자리를 채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경우 ‘3%룰’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 경제단체 부회장은 “규제를 피하려는 모습으로 인해 오히려 외국계 펀드에 공격의 빌미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삼성SDI, LG생활건강, 삼성물산 등의 경우 내년 봄에 임기가 끝나는 감사위원이 없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사외이사 임기가 보통 1~3년이어서 2022년 또는 2023년엔 임기가 끝나는 감사위원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력 ‘풀’도 걱정거리다. 가뜩이나 까다로운 요건에다 주주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분리 선임의 경우 더 높은 독립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장은 “위원 중 한 명 이상은 회계·재무 전문가여야 하고, 회사 또는 최대주주 등과 관계가 없어야 하는 기존 요건에다 모든 주주의 마음에 드는 인사를 어디서 구하느냐”고 말했다.

헤지펀드 공격까지 막아야

투기성 외국계 펀드가 분리 선임하는 감사위원을 제안할 가능성도 커졌다. 대주주 측 의결권 제한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 지분이 더 많은 기업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미국 헤지펀드 ‘화이트박스’는 최근 (주)LG에 “계열분리 계획을 철회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그러면서 “소액주주를 대표할 수 있는 이사로 구성된 기업지배구조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며 이사 선임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LG는 내년 3월 감사위원 두 명의 임기가 끝나는 만큼 지분 대결 대응 준비에 들어갔다.

표 대결 결과는 불투명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3%룰’ 적용 시 외국계 기관투자가와의 표대결에서 회사 측 지분이 앞서는 곳은 시총 30위 기업 중 8곳에 불과하다. 한 대기업 이사회 담당 임원은 “내년부터 적군이 뽑은 감사위원에게 경영 관련 주요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