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으로 발 동동거리는 일 없게 하겠다"더니…딱 반대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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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도입이 늦어진 데 대해 "정부가 백신 도입 테스크포스(TF)를 가동한 7월엔 국내 확진자가 적었고 전문가들도 백신 도입 신중론을 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7월에도 "백신을 공격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공개적인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백신이 개발됐는데 우리 국민들이 발만 동동거리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12월, 미국 영국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개발이 완료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들을 포함한 30여개국이 연내 백신이 도입되는데 한국은 손만 빨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전문가 지적을 가벼이 여긴 탓에 백신 전쟁에서 뒤처지고 '공수표'만 날렸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당시엔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5개가 임상시험 3상을 진행 중이었으나 언제 개발이 완료될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백신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최원석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의 투자와 구매는 공격적으로 가야 하고 접종 여부는 보수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을 들여놓고 접종은 신중하게 갈지언정 백신 자체는 최대한 빨리,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제언이었다. 최 교수는 "그것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법이고 제약사들이 안심하고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7월엔 전문가들도 백신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는 정 총리 설명과 배치된다.
최 교수는 정부가 수입 백신에서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점을 고려해 '맞춤형 조언'까지 내놨다. 그는 "확보한 백신을 사용하지 못했을 때 그것이 잘못된 정책이 아니라 그 시점에 필요한 정책이자 투자였다는 점을 국민으로부터 동의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공격적인 투자엔 위험이 따르지만 백신 확보는 국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위험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이 교수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개발 상황을 잘 지켜봐야 한다는 '쪽집게 과외'도 해줬다. 그는 "원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가장 빨리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엔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 가장 좋은 효과를 내는 것 같다"고 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대표적인 mRNA 백신이다. 이들 백신은 이달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전세계 30여개국이 이달부터 접종을 개시하는 백신이 바로 화이자, 모더나 백신이다.
정부는 현재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 도입 계약을 완료한 상태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아직 계약을 못했다. 이에 대해 지난 18일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개발 속도가 가장 빨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는 10월 임상시험 중 사망자가 나오는 등 개발에 차질을 빚었고, 아직도 세계 의약 당국의 승인을 못 받은 상태다.
결과적으로 투자 전략을 잘못 짠 셈인데, 화이자와 모더나 개발 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전문가 지적을 정부가 흘려 들은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정부는 이후에도 불확실성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며 해외 백신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이는 결국 정책 실패로 이어졌다. 일례로 정부는 올 9월 2021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백신 구매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지도 않았다. 당시 백신 구매 용도로 쓸 수 있던 예산은 1723억원. 화이자 백신 500만명분도 살 수 없는 액수다. 정부는 뒤늦게 9월말에야 올해 4차 추가경정예산으로 1839억원, 지난달 내년 예산안 수정으로 9000억원을 추가 확보했다.
4월부터 꾸려진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지원위원회의 백신분과장인 성백린 연세대 교수는 "정부는 10월까지도 코로나19 방역에 주력하며 백신 확보는 국내 백신 개발이 우선이라는 전략을 고수했다"며 "화이자, 모더나 백신 승인 가능성이 높아진 11월에서야 백신 구매를 서두르기 시작했으나 그땐 이미 늦었다"고 전했다.
서민준 기자 mornadol@hankyung.com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12월, 미국 영국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개발이 완료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들을 포함한 30여개국이 연내 백신이 도입되는데 한국은 손만 빨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전문가 지적을 가벼이 여긴 탓에 백신 전쟁에서 뒤처지고 '공수표'만 날렸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7월에도 "백신 적극 확보하라" 지적 나왔는데
지난 7월 31일 보건복지부는 ‘글로벌 코로나19 백신 개발 동향 및 확보전략’을 주제로 제7회 헬스케어 미래포럼을 열었다. 정부가 백신 도입 관련 전문가 의견을 공개적으로 수렴하는 자리였다.당시엔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5개가 임상시험 3상을 진행 중이었으나 언제 개발이 완료될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백신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최원석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의 투자와 구매는 공격적으로 가야 하고 접종 여부는 보수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을 들여놓고 접종은 신중하게 갈지언정 백신 자체는 최대한 빨리,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제언이었다. 최 교수는 "그것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법이고 제약사들이 안심하고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7월엔 전문가들도 백신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는 정 총리 설명과 배치된다.
최 교수는 정부가 수입 백신에서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점을 고려해 '맞춤형 조언'까지 내놨다. 그는 "확보한 백신을 사용하지 못했을 때 그것이 잘못된 정책이 아니라 그 시점에 필요한 정책이자 투자였다는 점을 국민으로부터 동의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공격적인 투자엔 위험이 따르지만 백신 확보는 국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위험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 잘 지켜봐야" 지적도 7월에
백신 도입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도 이어졌다. 이준행 전남대 의대 교수는 "미국 정부는 대부분의 백신 플랫폼에 전부 투자를 해서 임상시험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이를 잘 지켜보면 어떤 백신이 가장 좋은지를 빠른 시간 내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이 교수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개발 상황을 잘 지켜봐야 한다는 '쪽집게 과외'도 해줬다. 그는 "원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가장 빨리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엔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 가장 좋은 효과를 내는 것 같다"고 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대표적인 mRNA 백신이다. 이들 백신은 이달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전세계 30여개국이 이달부터 접종을 개시하는 백신이 바로 화이자, 모더나 백신이다.
정부는 현재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 도입 계약을 완료한 상태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아직 계약을 못했다. 이에 대해 지난 18일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개발 속도가 가장 빨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는 10월 임상시험 중 사망자가 나오는 등 개발에 차질을 빚었고, 아직도 세계 의약 당국의 승인을 못 받은 상태다.
결과적으로 투자 전략을 잘못 짠 셈인데, 화이자와 모더나 개발 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전문가 지적을 정부가 흘려 들은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 지적 무시하다 '공수표'만 날린 정부
정부는 토론회 때만 해도 전문가 의견을 잘 고려해 백신 확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토론회에서 "최소한 백신이 개발됐는데 우리 국민들이 백신이 없어서 동동거리는 사태는 없게 하겠다"고 강조했다.하지만 말뿐이었다. 정부는 이후에도 불확실성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며 해외 백신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이는 결국 정책 실패로 이어졌다. 일례로 정부는 올 9월 2021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백신 구매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지도 않았다. 당시 백신 구매 용도로 쓸 수 있던 예산은 1723억원. 화이자 백신 500만명분도 살 수 없는 액수다. 정부는 뒤늦게 9월말에야 올해 4차 추가경정예산으로 1839억원, 지난달 내년 예산안 수정으로 9000억원을 추가 확보했다.
4월부터 꾸려진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지원위원회의 백신분과장인 성백린 연세대 교수는 "정부는 10월까지도 코로나19 방역에 주력하며 백신 확보는 국내 백신 개발이 우선이라는 전략을 고수했다"며 "화이자, 모더나 백신 승인 가능성이 높아진 11월에서야 백신 구매를 서두르기 시작했으나 그땐 이미 늦었다"고 전했다.
서민준 기자 morna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