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순 카길한국 대표, 축산농가 찾아다니며 경영컨설팅 해준 '숫자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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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
'牛步萬里(우보만리)' 샐러리맨 정신으로
사료 매출 1조 쌓다
'牛步萬里(우보만리)' 샐러리맨 정신으로
사료 매출 1조 쌓다
카길은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곡물 및 사료 회사다. 70개국에 진출해 연간 125조원을 벌어들인다. 5년 전 카길은 155년 역사상 단일 공장으로 최대 생산량, 최첨단 기술을 끌어모은 스마트 공장을 지었다. 이 공장이 세워진 곳은 경기 평택시. 시장 규모가 중국,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작은 데다 축산업이 이미 성숙기에 이른 대한민국에 카길 본사가 약 1500억원을 투자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대한민국 축산업은 50년간 쉼 없이 성장을 거듭했고, 그 뒤엔 신뢰가 강한 축산 농가와 그보다 더 우직한 임직원이 있다’는 것이었다. 국내 4개 공장에서 생산하는 190만t의 사료는 전량 국내에서 소비된다. 국내 축산 사료시장의 9%를 차지한다.
박용순 카길애그리퓨리나(한국법인) 대표는 그만한 성과로 화답했다. 그는 대표 취임 2년 만에 매출 1조원 기록을 달성했다. 카길이 한국에 진출한 지 53년 만의 일이다.
“어린 시절 소와 돼지 몇 마리를 키우는 집에서 자랐어요. 남는 시간엔 송아지 여물 뜯어다 먹이고, 돼지 기르는 재미를 알았지요. 축산업에 대한 동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그렇게 서울대 축산과를 간 뒤 카길에 합류했습니다.”
카길애그리퓨리나는 카길의 자회사이자 한국법인이다. 1967년 한국에 진출했다. 사료를 직접 생산하고 판매한다. 평택, 군산, 정읍, 김해 등 4개 공장에서 ‘퓨리나’ ‘뉴트리나’ 등의 브랜드로 700여 종이 넘는 축산 배합사료를 만든다. 이 같은 축산 사료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산다는 건 고된 일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농가들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몇 년에 한 번씩 주거지를 옮겨 다녀야 한다. 각종 질병이나 사고가 터지면 농가는 가장 먼저 사료회사에 자문한다. 구제역 등의 전염병이 발생하면 24시간 비상대기 체계를 가동한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시장’이라는 것이 영업사원에겐 가장 큰 벽이다. 지금은 2500마리씩 키우는 돼지 농가가 많지만 1990년대 후반까진 100~150마리를 키우는 소농들이 많았다. 소와 돼지를 막론하고 ‘한 번 먹이던 사료는 잘 안 바꾸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는 ‘돼지 몸무게 내기’를 생각해냈다. 돼지 농가를 찾아가 “저놈 지금 몇 ㎏ 나갈 것 같냐. 예측한 뒤 직접 달아봅시다”는 제안을 했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그가 이겼다. 농가마다 경영에 관한 컨설팅도 해줬다. ‘지금 이때 이 사료를 더 먹여 건강하게 키운다면 올 연말 당신 통장에는 작년보다 정확히 30% 늘어난 금액이 찍혀 있을 것이다’ 등의 설득이었다.
“최신 기술, 영양의 뛰어난 점을 설명하는 건 어쩌면 공급자들의 생각입니다. 경쟁사들도 모두 그렇게 세일즈할 테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결과입니다. 농가가 우리와 손잡았을 때 어떤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박 대표의 사무실에는 붓글씨로 쓴 ‘우보만리’가 크게 걸려 있다. 오랜 인연을 이어온 한 농장주가 보내 온 선물이었다. 이 농장주는 선물을 보내고 ‘우보천리’ 액자를 자기 농장에 걸어 다 같이 더 멀리 가자는 뜻을 전했다. 현재 카길의 사료를 쓰는 농장 중 10년이 넘은 장기고객 비중은 42%에 달한다.
“500여 명이 넘는 카길 한국 직원들의 실력, 현장 직원들과 농가 간 끈끈한 네트워크가 본사의 투자를 이끌어 낸 포인트였습니다.”
카길 한국이 일하는 방식은 남다르다. 국내 평창기술연구소와 평택 중앙실험실은 5개의 글로벌 이노베이션 센터, 13개 글로벌 연구실과 협력한다. 국내에서의 연구 결과는 ‘실험실에만 갇혀 있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영업과 마케팅, 연구 인력이 함께 움직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고객”이라는 박 대표의 생각에서 나온 시스템이다.
그는 조직관리 원칙으로 ‘두 날개론’을 소개했다. ‘위기의식’과 ‘가슴 뛰는 희망’이라는 두 가지가 항상 공존해야 기업도 개인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입사원 등 모든 임직원에게는 ‘프로정신’을 강조한다.
“축산업은 여러 질병, 전염병과 싸우면서 이미 ‘비대면’이 오래전 시작됐습니다. 모든 농장과 농장주가 훈련이 돼 있지요. 앞으로는 분야를 막론하고 기업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생존 여부가 갈릴 겁니다.”
박 대표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식량 안보를 지키고, 안전하고 책임감 있는 식품을 만드는 근간에 동물 영양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2050년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됩니다. 동물성 단백질 수요는 지금보다 70% 더 늘어날 것이고요. 미래는 식량에 대한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될 것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기업으로서 카길은 더 건강한 방식으로 더 나은 단백질 공급을 하기 위한 혁신을 할 겁니다. 그 중심에 카길 한국과 전국 축산 농가가 있을 것입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 박용순 대표는…
△1987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축산학과 졸업
△2015년 서강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1993년 퓨리나코리아 입사
△2010년 카길애그리퓨리나 영업총괄 본부장
△2014년 카길애그리퓨리나 전략마케팅부 본부장
△2017년 카길 미국 본사 전략프로젝트 담당
△2018년 카길애그리퓨리나 대표이사
△2019년 카길 한국 총괄대표
박용순 카길애그리퓨리나(한국법인) 대표는 그만한 성과로 화답했다. 그는 대표 취임 2년 만에 매출 1조원 기록을 달성했다. 카길이 한국에 진출한 지 53년 만의 일이다.
‘우보만리’ 정신이 이룬 신화
박 대표는 축산업이 겨우 산업화의 길목에 접어들기 시작한 1993년 카길애그리퓨리나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나의 뿌리, 나의 생활은 늘 축산업에 가까이 있었다”고 말한다.“어린 시절 소와 돼지 몇 마리를 키우는 집에서 자랐어요. 남는 시간엔 송아지 여물 뜯어다 먹이고, 돼지 기르는 재미를 알았지요. 축산업에 대한 동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그렇게 서울대 축산과를 간 뒤 카길에 합류했습니다.”
카길애그리퓨리나는 카길의 자회사이자 한국법인이다. 1967년 한국에 진출했다. 사료를 직접 생산하고 판매한다. 평택, 군산, 정읍, 김해 등 4개 공장에서 ‘퓨리나’ ‘뉴트리나’ 등의 브랜드로 700여 종이 넘는 축산 배합사료를 만든다. 이 같은 축산 사료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산다는 건 고된 일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농가들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몇 년에 한 번씩 주거지를 옮겨 다녀야 한다. 각종 질병이나 사고가 터지면 농가는 가장 먼저 사료회사에 자문한다. 구제역 등의 전염병이 발생하면 24시간 비상대기 체계를 가동한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시장’이라는 것이 영업사원에겐 가장 큰 벽이다. 지금은 2500마리씩 키우는 돼지 농가가 많지만 1990년대 후반까진 100~150마리를 키우는 소농들이 많았다. 소와 돼지를 막론하고 ‘한 번 먹이던 사료는 잘 안 바꾸는’ 성향을 갖고 있다.
우직한 농가 움직인 비결은 ‘숫자’
보수적인 사료시장에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하나였다. ‘숫자로 말하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축산업은 고도성장기였습니다. ‘만들기만 하면 다 팔리는’ 시장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는 축산 사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밀병기가 필요한 때였어요.”그는 ‘돼지 몸무게 내기’를 생각해냈다. 돼지 농가를 찾아가 “저놈 지금 몇 ㎏ 나갈 것 같냐. 예측한 뒤 직접 달아봅시다”는 제안을 했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그가 이겼다. 농가마다 경영에 관한 컨설팅도 해줬다. ‘지금 이때 이 사료를 더 먹여 건강하게 키운다면 올 연말 당신 통장에는 작년보다 정확히 30% 늘어난 금액이 찍혀 있을 것이다’ 등의 설득이었다.
“최신 기술, 영양의 뛰어난 점을 설명하는 건 어쩌면 공급자들의 생각입니다. 경쟁사들도 모두 그렇게 세일즈할 테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결과입니다. 농가가 우리와 손잡았을 때 어떤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소통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박 대표의 사무실에는 붓글씨로 쓴 ‘우보만리’가 크게 걸려 있다. 오랜 인연을 이어온 한 농장주가 보내 온 선물이었다. 이 농장주는 선물을 보내고 ‘우보천리’ 액자를 자기 농장에 걸어 다 같이 더 멀리 가자는 뜻을 전했다. 현재 카길의 사료를 쓰는 농장 중 10년이 넘은 장기고객 비중은 42%에 달한다.
축산업 발전 53년 이끈 카길
그는 카길의 평택공장 투자가 '한국 축산에 대한 자신감'이었다고 표현했다. 중국, 베트남, 남미 등 신흥국의 축산업은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그 동안 한국은 투자국으로서 예외로 여겨졌던 곳이다.“500여 명이 넘는 카길 한국 직원들의 실력, 현장 직원들과 농가 간 끈끈한 네트워크가 본사의 투자를 이끌어 낸 포인트였습니다.”
카길 한국이 일하는 방식은 남다르다. 국내 평창기술연구소와 평택 중앙실험실은 5개의 글로벌 이노베이션 센터, 13개 글로벌 연구실과 협력한다. 국내에서의 연구 결과는 ‘실험실에만 갇혀 있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영업과 마케팅, 연구 인력이 함께 움직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고객”이라는 박 대표의 생각에서 나온 시스템이다.
그는 조직관리 원칙으로 ‘두 날개론’을 소개했다. ‘위기의식’과 ‘가슴 뛰는 희망’이라는 두 가지가 항상 공존해야 기업도 개인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입사원 등 모든 임직원에게는 ‘프로정신’을 강조한다.
동물영양은 과학의 총집합
그는 사료산업이 과학의 총집합이라고 믿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세계적 재난을 거치며 축산과 사료산업은 더 중요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축산업은 여러 질병, 전염병과 싸우면서 이미 ‘비대면’이 오래전 시작됐습니다. 모든 농장과 농장주가 훈련이 돼 있지요. 앞으로는 분야를 막론하고 기업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생존 여부가 갈릴 겁니다.”
박 대표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식량 안보를 지키고, 안전하고 책임감 있는 식품을 만드는 근간에 동물 영양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2050년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됩니다. 동물성 단백질 수요는 지금보다 70% 더 늘어날 것이고요. 미래는 식량에 대한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될 것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기업으로서 카길은 더 건강한 방식으로 더 나은 단백질 공급을 하기 위한 혁신을 할 겁니다. 그 중심에 카길 한국과 전국 축산 농가가 있을 것입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 박용순 대표는…
△1987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축산학과 졸업
△2015년 서강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1993년 퓨리나코리아 입사
△2010년 카길애그리퓨리나 영업총괄 본부장
△2014년 카길애그리퓨리나 전략마케팅부 본부장
△2017년 카길 미국 본사 전략프로젝트 담당
△2018년 카길애그리퓨리나 대표이사
△2019년 카길 한국 총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