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업은 없었다…쿠팡의 대담하고도 무서운 '미션'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쿠팡이 추구하는 ‘미션’은 대범하면서도 무섭다. ‘쿠팡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김범석 창업자를 비롯한 쿠팡 임직원들의 목표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팔고, 집 앞까지 빠르게 배송해주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의 틀만으로 쿠팡을 규정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쿠팡은 24일 ‘쿠팡플레이’를 출시, OTT(인터넷을 통한 콘텐츠 제공 서비스)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쿠팡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뤄질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OTT 진출, 의외의 조용한 출발

쿠팡이 이날 공개한 쿠팡플레이는 유료(월 2900원) 멤버십인 와우 회원들을 위한 부가 서비스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500만명을 웃도는 유료 회원들은 기존의 무료 배송·반품 외에 쿠팡플레이가 제공하는 각종 콘텐츠들을 공짜로 볼 수 있다. 계정 1개로 최대 5명이 시청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최대 4명이 월 1만4500원(프리미엄 서비스)에 시청할 수 있는 넷플릭스(회원수 약 360만명)에 비해 가격은 저렴하지만 콘텐츠의 다양성 측면에선 넷플릭스와 비교해 열세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쿠팡 스스로도 “시작은 미약하다”고 말할 정도다. IT(정보기술) 및 콘텐츠 업계에선 쿠팡이 ‘화려한 출발’ 대신에 ‘돌다리도 두드리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대어(大漁)급 콘텐츠로 넷플릭스에 정면 도전함으로써 시선을 끌 수도 있겠지만, 초기에 사용량이 급증해 서비스가 원활치 못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메이저리그 등 스포츠 중계권을 포함해 쿠팡이 대형 콘텐츠 제작자(CP)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쿠팡 관계자는 “브라이언 크랜스톤 주연의 최신 미국TV 시리즈 ‘존경하는 재판장님(Your Honor)’, 교육형 뉴스 콘텐츠 ‘CNN10’ 등 다른 OTT 서비스에서는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의 OTT 시장 진출은 와우 회원수 확장이란 목적 외에도 다양한 무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외로 쿠팡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할 때 K-콘텐츠 등을 담은 쿠팡플레이를 앞세워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쿠팡은 OTT 플랫폼을 갖추기 위해 올 7월 동남아시아 비디오 스트리밍 업체인 ‘훅(Hooq)’을 인수한 바 있다.

콘텐츠와 커머스를 결합한 신개념 유통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한류 스타나 유명 유튜버 등 대중에게 영향력이 높은 소위 ‘인플루언서’들이 갖고 있는 유·무형의 콘텐츠를 상품화해 쿠팡이란 플랫폼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의미다. POD(print on demand, 주문제작) 방식으로 나만의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머치바이아마존의 모델을 쿠팡이 벤치마킹할 가능성도 높다.

◆"쿠팡은 전에 없던 기업 유형"

향후 관전 포인트는 쿠팡의 서비스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이냐다. 쿠팡은 2010년 티몬, 위메프 등과 함께 소셜커머스 업체로 출발해 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을 위협하는 이커머스의 강자로 부상했다.

전국에 170여 개에 달하는 물류시설을 만들어 ‘로켓배송’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2014년 불과 3484억원이었던 쿠팡의 매출은 매년 급증, 불과 5년 만인 지난해 7조1530억원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자상거래가 폭발하면서 올해 매출은 1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 같은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쿠팡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극이다.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연간 조(兆) 단위 적자를 내면서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며 “쿠팡은 추가 투자 유치나 상장으로 외부 자금을 수혈받지 않고선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이 가려는 ‘아마존 웨이(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아마존도 적자를 면했을 뿐 연간 이익은 구글 등 다른 IT 기업에 비해 훨씬 적다’, ‘아마존이 해외에 진출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쿠팡이나 아마존을 기존 기업 분석의 틀로 봐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 IT 분야 전문가는 “아마존의 실적(이익) 곡선을 보면 수년째 거의 변화없이 일직선에 가까운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버는 돈을 우주, 드론, 자율주행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사업에 투자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이익을 조정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전년 대비 높은 이익을 내는 것이 기업의 목표라는 기존 관념의 틀을 벗어났다는 분석이다.

◆신사업 도전 장려하는 조직

쿠팡의 진화와 관련해서도 아마존 웨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쿠팡은 수년째 적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신규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미니 CEO’라고도 불리는 PO(product owner) 직군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쿠팡의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약 80명 정도인 PO들은 새로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기존 사업의 기능과 성능을 개선하는 일을 맡는 책임자급 직원이다. 일반 대기업들이 신규사업팀 등 별도 조직을 만들어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는데 비해 쿠팡은 각각의 부서에 PO들을 심어두고 현업에 근거한 신규 사업을 발굴한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PO들은 개발자 등 사업화에 필요한 자원을 배당받아 CEO처럼 운영한다. 쿠팡플레이도 PO인 김성한 디렉터가 실무 책임을 맡고 있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엔 연간 사업계획이나 연말 정기 인사도 없다”며 “쿠팡없이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도록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 배송이 미래 목표

쿠팡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올해에만 약 3000억원을 투자한 것도 신규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물류센터발(發) 전염병의 확산이 기업 신뢰도에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만으로는 선뜻 할 수 없는 규모의 투자다. 일반 기업이라면 이 돈을 적자를 메우는 데 썼을 가능성이 크다.

쿠팡이 2000여 명이 넘는 IT 엔지니어를 보유한 IT서비스 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방역을 포함한 IT 보안과 관련한 기업용 솔루션 제공이 쿠팡의 신규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추론이다.

쿠팡이 조 단위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물류시설을 계속 짓고, 배송차량과 배송기사들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것도 미래를 내다 본 투자의 개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우버의 CTO(최고기술책임자)였던 투안 팸을 자사 CTO로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통 및 IT업계에선 쿠팡이 자율주행을 기반으로 한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데이터를 축적하는 중이라고 보고 있다. 우버의 신임 CTO는 쿠팡으로 옮긴 이유에 대해 “한국과 같은 밀집형 도시에서 인공지능형 차량 배차 시스템에 도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다”고 했다. 쿠팡에 30억달러를 투자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우버, 알리바바와 동맹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