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먹고 자고 '나랏일'까지…침대는 제왕들의 통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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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의 세계사
브라이언 페이건·나디아 더러니 지음 / 안희정 옮김 / 올댓북스
344쪽│1만8000원
프랑스 왕가의 전통 '군주의 침대'
루이14세, 죽기 이틀 전까지 집무
브라이언 페이건·나디아 더러니 지음 / 안희정 옮김 / 올댓북스
344쪽│1만8000원
프랑스 왕가의 전통 '군주의 침대'
루이14세, 죽기 이틀 전까지 집무
![GettyImagesBank](https://img.hankyung.com/photo/202012/AA.24816459.1.jpg)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은 고고학자 나디아 더러니와 함께 쓴 《침대 위의 세계사》에서 프랑스 왕가의 전통이었던 ‘군주의 침대’를 이렇게 소개한다. 프랑스 카페 왕조의 루이 9세(1214~1270년)는 “왕이 국정을 수행하는 곳에 언제나 군주의 침대를 두어야 한다”고 법으로 정했다. 부르봉 왕조의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년)는 죽기 이틀 전까지 이 침대에서 정무를 봤다.
![[책마을] 먹고 자고 '나랏일'까지…침대는 제왕들의 통치 무대](https://img.hankyung.com/photo/202012/AA.24814876.1.jpg)
인류가 언제부터 침대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침대는 남아프리카의 동굴에서 발견됐다. 대략 7만 년 전에 현생 인류가 동굴 바닥을 파내서 만든 침대들이 남아 있다. 영어 베드(bed)는 원시 게르만어 어원에서 ‘땅바닥을 파내서 만든 쉼터’를 뜻한다. 침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미국, 중동, 중남미 등 지구촌 거의 모든 곳의 과거와 현재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들은 로마제국 시기의 침대 형태를 묘사하며 침대의 복합적 용도를 보여준다. 로마제국에선 사용 목적에 따라 침대의 명칭을 구분했다. 수면용 침대는 ‘렉투스 쿠비쿨라리스’, 결혼 후 사랑을 나누는 침대는 ‘렉투스 제니알리스’라고 불렀다. 식탁 역할의 침대도 있었다. ‘렉투스 디스쿠비토리우스’는 3인용 침대 겸 식탁이었다. 오른팔로 음식을 집기 위해 왼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앉았다.
침실이 ‘완벽한 개인적인 공간’이 된 건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부터다. 도시 인구가 급증하면서 공공위생 문제가 불거졌고, 건강을 위한 독립 침실 인테리어가 생겨났다. 밀집된 도시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구도 커졌다.
‘수면의 산업화’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19세기에 형광등과 석유등이 보급되면서 밤의 수면 패턴이 깨졌기 때문이다. 침대는 불면증 치료와 수면제 생산, 수면습관 교정 등 ‘잠을 잘 자기 위한 새로운 산업’의 무대가 됐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