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돈줄죄기…서민 대출절벽
서울 관철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모씨(61)는 새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주거래 은행에서 “연말까지 대출을 내주기 어렵다”며 연초에 다시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손님이 뚝 끊겼지만 통장에선 매달 임차료 187만원과 가스비 전기요금 등으로 200만원 이상이 빠져나간다. 지난 7월 소상공인 코로나19 2차 대출로 마련한 1000만원은 다 쓴 지 오래다. 김씨는 “아침마다 가게 문앞에 뿌려진 대부업체 전단에 눈길이 가지만 참고 있다”며 “신년에 대출이 풀리기만을 기다린다”고 털어놨다.

중산층·서민들이 ‘대출 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은행들이 갑자기 가계대출의 문턱을 높인 탓이다.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등 시중은행들은 이달 중순부터 신규 개인신용대출을 막거나, 만기 연장 시 원금 10~20%를 상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도 대출 금리를 대폭 인상하거나 대출 한도를 낮추고 있다. 금융당국이 대출총량을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어서다.

자금 융통이 어려워진 자영업자와 서민들은 고금리를 감수하고 2금융권과 불법 사(私)금융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카드 캐피털 저축은행 보험 등 2금융권 가계대출은 전달에 비해 4조7000억원 늘어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은행 대출을 조이자 새로운 대출처를 찾는 ‘풍선효과’는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출 대란’이 내년에도 지속돼 서민 금융에 피가 마를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은행 가계대출을 더 바짝 죄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주요 은행에 기업대출 비중을 50~60%대로 늘리라고 요구했다. 5대 은행의 기업대출 비중은 45.3~48.7% 수준이다. 가계대출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년에도 가계대출 여건이 개선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촉발된 집값 폭등을 대출 규제로 막으려다 보니 애먼 서민들이 돈줄이 막히면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소람/김대훈/오현아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