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리적인 해석은 '징계 근거 불충분'…여론은 징계에 무게
키움 관련 상벌위 판단은 '엄중경고'…KBO총재의 최종 결정은
독립기구인 KBO 상벌위원회의 결정은 '엄중 경고'였다.

반면 프로야구선수협회, 은퇴선수협회 등 야구 관계자들은 '엄중한 처벌'을 원한다.

키움 히어로즈 허민 의장에 관한 법리적인 해석과 여론의 간극은 꽤 크다.

2020년이 끝나면 KBO를 떠나는 정운찬 총재에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KBO는 지난 22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팬 사찰 의혹을 받는 키움과 관련해 논의했다.

마라톤 회의 끝에 상벌위원회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인 정운찬 총재는 상벌위원회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정운찬 총재는 '허민 의장에게 실질적인 징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정 총재 역시 여론도 실질적인 징계를 원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징계의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허민 키움 이사회 의장은 지난 6월 퓨처스리그 훈련장에서 2군 선수를 상대로 공을 던진 장면이 보도된 뒤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키움은 허 의장의 투구 모습을 촬영해 방송사에 제보한 팬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키움에서 방출된 이택근은 최근 "구단이 해당 영상을 촬영한 이를 찾아내기 위해 폐쇄회로(CC)TV로 팬을 사찰하고 해당 팬을 조사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했다"며 KBO에 징계 요구서를 제출했고, 상벌위원회가 소집됐다.

키움 관련 상벌위 판단은 '엄중경고'…KBO총재의 최종 결정은
상벌위원회는 오랜 논의 끝에 "처벌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

상벌위원회에 포함된 법조인들이 주로 '법리적인 해석과 KBO 규약상 엄중 경고가 가장 적합한 징계'라고 해석했다.

키움 구단과 허민 의장을 징계할 수 있는 규약상의 근거는 '제14장 유해행위 제151조 품위손상행위'다.

이 규약에서는 '마약범죄, 병역비리, 인종차별, 폭력, 성범죄, 음주운전, 도박, 도핑 등 경기 외적으로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예로 들었다.

'허민 의장이 선수들을 대상으로 공을 던지는 것과 이를 촬영한 팬을 사찰한 행위'를 품위손상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법리적인 해석에 무게를 둔 법조인들은 "신고인의 주장은 이해하지만, 팬 사찰의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다"고 해석했다.

이 부분에서 신고인과 키움 구단의 주장은 엇갈린다.

이택근은 "구단이 '영상을 촬영 팬에게 언론사 제보 여부와 이유를 자신에게 확인해 달라'고 지시했다.

CCTV로 팬을 사찰하고, 선수인 나에게 부당한 지시를 했다"고 밝히고, 구단 관계자와의 통화 녹취파일을 증거로 내세웠다.

키움 구단은 "CCTV를 확인한 이유는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에서 제보 영상이 촬영된 것으로 추측됐기 때문이다.

CCTV 확인 결과, 보안상 추가조치가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영상을 촬영한 분에게 어떠한 행위도 취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사안을 보수적으로 봐야 하는 법조인들은 "법률적으로만 보면 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신고인의 주장을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해석했다.

KBO 내부에서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면 키움이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리그를 관할하는 KBO로서는 여론만큼이나 '법리적인 해석'이 중요하다.

KBO의 판단이 법과 대치된다면, KBO 실무진이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크다.

실행위원회의 결정을 외면하고, 총재가 징계 수위를 정하는 이례적인 상황도 KBO로서는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논란이 커지고, 날카로운 여론이 형성된 이번 사안을 '엄중 경고'로 끝낸다면 야구계 안팎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규약과 여론의 격차가 큰 탓에 올해 안으로 결론을 내기로 한 정운찬 총재와 KBO의 고민은 깊다.

하지만, 이번을 재발 방지의 기회로 삼을 수는 있다.

KBO가 '사적으로 선수단이나 야구장 안팎을 활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든다면, 허민 의장과 키움뿐 아니라 프로야구 관련 관계자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의 일탈을 처벌할 근거가 생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