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정책에 혈세 수천억 줄줄…또 찾아온 '태양광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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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태양광·풍력 보급 확대를 위해 설익은 정책을 시행했다가 부작용이 속출하면 이를 거둬들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내년부터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한 태양광발전소에 주는 보조금 대부분을 삭감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이런 식으로 낭비된 혈세 규모는 최대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산업부는 보조금을 대폭 삭감한 이유에 대해 "일부 제도 악용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한다. 하지만 에너지업계에서는 "처음부터 제도가 잘못 설계된 게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ESS를 설치한 발전소는 낮에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저장했다가 밤에 쓰거나 판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2017년부터 정부는 태양광발전소에 딸린 ESS 사용량에 비례해 최고 수준의 보조금(REC 가중치 5.0)을 줬다. 전기 생산이 들쭉날쭉하다는 태양광의 단점을 ESS로 보완할 수 있다고 봐서다.
문제는 사업자 입장에서 최대한 많은 태양광·풍력 생산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방전하는 게 유리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태양광 발전용량의 3배 이상 ESS를 설치하는 등 보조금 수령을 본업으로 삼는 발전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전기 소비가 많은 낮 시간 동안에는 태양광 전기를 ESS에 고스란히 담았다가, 수요가 적은 밤에 이를 내다파는 비효율이 발생한 것이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에 설치된 ESS의 총 용량은 7.1GW 가량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15.8GW)의 절반에 육박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ESS에 과잉 투자가 일어난 상태"라고 했다.
2015년 이후 이들 발전소가 타간 보조금은 7157억원 가량으로 추산됐다. 설치보조금(195억원)과 한전의 전기료 특례할인(4822억원), REC보조금(2140억원) 등이다. 윤 의원은 "수천억원의 세금이 신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고 전력 수급을 안정화시킨다는 원래 목적에 전혀 맞지 않게 낭비됐다"며 "이 중 대부분은 보조금을 노린 태양광 사업자들에게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설익은 제도 설계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일이 잦다. '산지 태양광'이 대표적이다. 온실가스 감축 및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계적인 대세를 따르려면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특성상 산에도 태양광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조금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서 멀쩡한 나무를 베고 태양광을 설치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정부가 수 차례에 걸쳐 보완책을 발표했지만, 이미 산지 태양광은 태양광으로 인한 경관 훼손 및 환경 파괴의 대명사처럼 인식됐다.
버섯 재배사나 축사 지붕 위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보조금을 얹어 주는 정책도 비슷한 사례다. 남는 공간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보조금을 얹어 주겠다는 취지지만 악용이 빈번하다. 에너지공단이 올해 발표한 '2019년 RPS(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 사후관리 추진 결과보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11월 조사한 버섯 재배사·축사 태양광 187개소 중 98개소가 보조금을 더 타내기 위해 위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뒤늦게 관련 점검을 강화하고 제도를 보완하기로 했다.
ESS 보조금을 갑자기 줄이는 것도 또다른 '설익은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SS 중소기업들은 최근 ‘ESS REC 관련’이라는 제목의 호소문에서 “정부의 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에 ESS 확대가 필수적인데도 정부가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많은 비용을 투자한 중소기업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한 ESS 부품 사업자는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 정책의 연속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보조금을 낮춰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루아침에 보조금이 대폭 삭감되면서 또다른 피해가 발생할 게 뻔하다”고 비판했다.
윤영석 의원은 "제도 악용 소지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각종 태양광 보급 대책을 서둘러 시행했다가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보급 확대 정책을 펼치기 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정부가 제도 설계 잘못해 업계만 피해"
2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신규 ESS 설치 태양광발전소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가 4.0에서 ‘0’으로 하향 조정된다. REC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에 주는 일종의 정책 보조금이다. 가중치가 높을수록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다.산업부는 보조금을 대폭 삭감한 이유에 대해 "일부 제도 악용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한다. 하지만 에너지업계에서는 "처음부터 제도가 잘못 설계된 게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ESS를 설치한 발전소는 낮에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저장했다가 밤에 쓰거나 판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2017년부터 정부는 태양광발전소에 딸린 ESS 사용량에 비례해 최고 수준의 보조금(REC 가중치 5.0)을 줬다. 전기 생산이 들쭉날쭉하다는 태양광의 단점을 ESS로 보완할 수 있다고 봐서다.
문제는 사업자 입장에서 최대한 많은 태양광·풍력 생산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방전하는 게 유리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태양광 발전용량의 3배 이상 ESS를 설치하는 등 보조금 수령을 본업으로 삼는 발전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전기 소비가 많은 낮 시간 동안에는 태양광 전기를 ESS에 고스란히 담았다가, 수요가 적은 밤에 이를 내다파는 비효율이 발생한 것이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에 설치된 ESS의 총 용량은 7.1GW 가량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15.8GW)의 절반에 육박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ESS에 과잉 투자가 일어난 상태"라고 했다.
2015년 이후 이들 발전소가 타간 보조금은 7157억원 가량으로 추산됐다. 설치보조금(195억원)과 한전의 전기료 특례할인(4822억원), REC보조금(2140억원) 등이다. 윤 의원은 "수천억원의 세금이 신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고 전력 수급을 안정화시킨다는 원래 목적에 전혀 맞지 않게 낭비됐다"며 "이 중 대부분은 보조금을 노린 태양광 사업자들에게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강조했다.
정부 '태양광 잔혹사', 언제까지 계속되나
정부는 태양광·풍력을 하기 어려운 한국의 환경적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미국·중국 등 땅이 넓은 국가는 물론 유럽연합(EU) 등과 비교해서도 재생에너지 발전 환경이 좋지 않다. △산지가 많고 △대륙성 기후라 사계절이 더 뚜렷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사실상 섬나라와 같아 독일처럼 주변국과 남는 전기를 사고 팔기 어려워서다.하지만 설익은 제도 설계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일이 잦다. '산지 태양광'이 대표적이다. 온실가스 감축 및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계적인 대세를 따르려면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특성상 산에도 태양광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조금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서 멀쩡한 나무를 베고 태양광을 설치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정부가 수 차례에 걸쳐 보완책을 발표했지만, 이미 산지 태양광은 태양광으로 인한 경관 훼손 및 환경 파괴의 대명사처럼 인식됐다.
버섯 재배사나 축사 지붕 위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보조금을 얹어 주는 정책도 비슷한 사례다. 남는 공간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보조금을 얹어 주겠다는 취지지만 악용이 빈번하다. 에너지공단이 올해 발표한 '2019년 RPS(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 사후관리 추진 결과보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11월 조사한 버섯 재배사·축사 태양광 187개소 중 98개소가 보조금을 더 타내기 위해 위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뒤늦게 관련 점검을 강화하고 제도를 보완하기로 했다.
ESS 보조금을 갑자기 줄이는 것도 또다른 '설익은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SS 중소기업들은 최근 ‘ESS REC 관련’이라는 제목의 호소문에서 “정부의 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에 ESS 확대가 필수적인데도 정부가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많은 비용을 투자한 중소기업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한 ESS 부품 사업자는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 정책의 연속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보조금을 낮춰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루아침에 보조금이 대폭 삭감되면서 또다른 피해가 발생할 게 뻔하다”고 비판했다.
윤영석 의원은 "제도 악용 소지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각종 태양광 보급 대책을 서둘러 시행했다가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보급 확대 정책을 펼치기 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